상처와 고통, 찬란한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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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고통, 찬란한 빛으로

입력 : 2026.04.23 17:46

女추상 거장 방혜자 회고전
퐁피두 소장품 등 67점 전시
한지 위에 내면의 성찰 담아
스테인드글라스 작업도 공개

'하늘의 땅'(2011).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하늘의 땅'(2011).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고딕 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중 동양인이 처음으로 제작한 작품이 있다. 주인공은 한국 여성 추상화가 방혜자. 프랑스에서 동서양의 미학을 혼합한 독자적인 예술 세계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국내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작가의 회고전이 국공립 미술관 최초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청주관에서 24일부터 열리는 회고전 '방혜자-천지에 마음의 빛 뿌리며 간다'를 연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2점과 프랑스에서 대여해온 40여 점을 포함해 총 67점을 선보인다.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 소장품 8점, 파리 시립 세르누치박물관 소장품 9점 등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 절반 이상을 채운다.

작가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1961년 국내 1호 국비장학생으로 프랑스로 건너갔다. 프레스코,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기법을 익히며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을 흡수했지만, 내면을 향한 성찰을 바탕으로 동서양의 재료와 기법을 결합한 독자적 화풍을 쌓았다.

서예를 즐겼던 외조부와 어머니의 영향을 일찍부터 받은 작가는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오히려 한국의 전통 미감에 더 깊이 이끌렸다. 1968년 귀국 후 한지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고, 한지는 이후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매체가 됐다.

전시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설치작을 재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빛의 탄생'으로 시작한다. 1960년대 초기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 회화부터 한지를 도입한 1970년대 작품, 천연안료와 프랑스 남부 루시용의 붉은 흙을 사용한 1990년대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의 예술이 절정에 달한 2000년대 이후 대작도 전시된다.

작가는 평생 빛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전시명은 작가가 직접 쓴 시 '빛을 찾아서'에서 따왔다. 그에게 빛은 단순한 시각 현상이 아닌 생명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본 물의 반짝임, 병약했던 유년기와 전쟁의 고통을 거치며 쌓인 내면의 사색이 빛으로 승화됐다. 불교와 가톨릭을 아우르는 종교적 성찰은 작업 전 명상과 수양으로 이어졌고, 이는 고스란히 화면에 투영됐다. 작품에서 쏟아지는 찬란한 빛깔은 보는 이를 자연스럽게 경건하게 만든다.

빛을 표현한 원형 작업이 특히 눈길을 끈다. 작가는 닥종이를 고깔 모양으로 구겨 주름을 만들고 이를 펼쳐 먹으로 원형을 그렸다. 이후 종이의 결을 따라 붓질했다. 튀어나온 부분에 색이 입혀지고 파인 부분에는 여백이 남는다. 여기에 아크릴, 천연안료, 유화 등을 여러 겹 쌓아 올렸다. 뒷면에 색을 입혀 앞면에 은은하게 스미게 하는 동양화의 배체법을 더해 독특한 마티에르를 완성했다. 빛이 반짝이듯 아름다운 색채가 깊이 있는 화면에서 피어오른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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