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40~60대 구직자 1만 명과 기업 450곳을 동시 조사한 역대 최대 규모의 중장년 일자리 보고서를 내놨다. 중장년 구직자의 80% 이상이 5년 내 재취업을 원했지만 희망 임금이 월 380만원에 달해 기업이 제공 가능한 수준(월 200만~300만원)과 큰 격차를 보였다. 시는 내년부터 중장년층 취업을 돕기 위해 전국 최초로 경력 진단, 직업훈련, 1 대 1 매칭까지 지원하는 ‘중장년취업사관학교’를 열 예정이다.
◇ 중장년층 “다시 일하고 싶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23일 정책포럼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서울 중장년 일자리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 중장년 인구 362만 명 가운데 289만 명(83%)이 5년 내 재취업 등 경제활동 변화를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이 중 78만 명은 이미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110만 명은 구체적인 취업 계획까지 세운 상태였다.
연령대별 특성도 뚜렷했다. 40대는 직무 업그레이드와 신기술 교육 등 ‘성장’을 위한 수요가 높았고, 50대는 희망임금(381만원)과 수용임금(331만원) 간 격차가 커 이를 메워줄 ‘브리지’ 지원이 필요했다. 60대는 임금보다 건강과 근무 유연성을 중시하며 사회공헌형·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구직 이유로는 중장년 82.3%가 ‘생계유지’를 꼽았다.
반면 기업 조사에서는 냉혹한 현실이 드러났다. 참여 기업의 57.1%가 중장년 정규직 채용 의향을 밝혔지만, 제공 가능 임금은 월 200만~300만원 미만이 가장 많아 구직자가 원하는 수준과 큰 차이를 보였다.
채용 희망 직무는 제조업(25.3%)이 가장 많았고, 도소매·정보기술(IT)·전문서비스업이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스마트팩토리·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신기술 기반 직무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기업이 꼽은 중장년의 강점은 책임감(71.3%), 문제 해결 능력(41.7%), 기술 역량(40.7%) 순으로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를 원했다.
기업의 63.9%는 ‘고용지원금·맞춤형 매칭 등 직접적 인센티브’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꼽았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기업은 즉시 성과를 낼 수 있는 숙련 인재를 원하지만, 구직자는 경험을 살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다”며 “양측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정책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중장년취업사관학교 내년 3월 개관
서울시는 이런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내년 3월 마포·광진·은평·도봉·구로 등 5개 권역에 중장년취업사관학교를 개관한다. 2028년까지 16곳으로 확대한 뒤 매년 중장년층 1만7000명의 재도약을 지원할 계획이다. 사관학교는 경력 진단, 직업 탐색, 기업 맞춤형 직업훈련, 1 대 1 채용 매칭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40대는 AI·신기술 역량 강화, 50대는 경력 전환, 60대는 사회공헌형·시간제 일자리 등 세대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최영섭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서울형 일자리 생태계가 중장년과 기업 모두에 실질적 해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 모델이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장년 정책을 비용이 아니라 미래 성장동력으로 봐야 한다”며 “생애주기별 맞춤형 정책과 데이터 기반 매칭 시스템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