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 최희암, ‘조던’…LG 조상현 감독에겐 인복, 견복(犬福)이 가득[이헌재의 인생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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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 LG 감독이 애완견 조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상현 제공

조상현 LG 감독이 애완견 조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상현 제공

연세대 ‘독수리 5형제’가 한국 농구계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최희암 감독이 이끌던 연세대는 1990년대 쟁쟁한 실업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전국 최강으로 군림했다. 서장훈, 문경은, 이상민, 김훈, 우지원 등 훈훈한 외모에 빼어난 실력을 갖춘 이들은 농구대잔치를 제패하며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 대접을 받았다.

조상현 LG 세이커스 감독(49)은 연세대 전성시대를 맛본 마지막 세대 중 한 명이다. 대전고를 졸업하고 1995년 쌍둥이 동생 조동현과 함께 연세대에 입단한 그는 신입생 시절부터 주전 슈터 자리를 꿰찼고, 1996~1997 농구대잔치에서 2년 선배 서장훈 등과 함께 연세대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조 감독은 “당시 연세대는 말 그대로 스타 군단이었다. 하지만 나는 쟁쟁한 형들에 비하면 스타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연대 전성기의 끝물에 형들의 조금 덕을 좀 봤던 것 뿐”이라며 웃었다.

선수 시절 조상현 감독(오른쪽)과 쌍둥이 동생 조동현 감독.  동아일보 DB

선수 시절 조상현 감독(오른쪽)과 쌍둥이 동생 조동현 감독. 동아일보 DB

연세대 주포였던 조 감독도 스타인 건 분명하지만 그의 말처럼 서장훈, 문경은, 이상민 등 기라성같은 선배들의 그늘에 살짝 가려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지도자가 돼서는 쟁쟁한 선배들도 해내지 못한 큰일을 해냈다. 5월 끝난 2024∼2025시즌 한국프로농구(KBL) 챔피언결정전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이다. 1997년 창단한 LG 농구단이 28년 만에 거둔 첫 우승이었다.

이 우승으로 조 감독은 프로에서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 모두 챔프전 우승을 이뤄낸 세 번째 농구인이 됐다. 그는 1999∼2000시즌엔 SK 선수로, 2015∼2016시즌엔 오리온 코치로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그에 앞서 ‘선수, 코치, 감독 우승’을 모두 경험한 사람은 김승기 전 소노 감독(53)과 전희철 SK 감독(52) 등 두 명밖에 없다.

LG 조상현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프로농구 감독은 이처럼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직업이다. 뉴스1

LG 조상현 감독이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프로농구 감독은 이처럼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직업이다. 뉴스1

첫 우승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그런 점을 감안해도 그는 이례적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경기 후 코트 위에서 굵은 눈물을 쏟아냈고, 이후 라커룸에서 들어가서도 선수들과 함께 울었다. 혼자 감독실에 들어와서도 남은 눈물을 흘렸다. 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울게 했을까. 조 감독의 지난 시즌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앞서 지난 2년 연속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도 챔프전에 오르지 못했던 LG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8명의 선수를 물갈이하는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하지만 시즌 시즌과 함께 구상이 어그러졌다. 기대했던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 속에 팀이 8연패의 늪에 빠진 것이다. 조 감독은 “비시즌 때 내 결정이 잘못된 게 아닐까 스스로 의심이 들었다”라며 “하지만 연패를 당하는 와중에도 경기 운영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고 느꼈다. 외국인 선수와 타마요 등이 살아나면 얼마든지 반등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LG는 거짓말처럼 반등했다. 외국인 선수들이 돌아왔고 양준석, 유기상 등 젊은 피들이 기대 이상으로 분전하면서 정규리그를 2위로 마쳤다. 동생 조동현 감독이 지휘하던 현대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도 3전 전승으로 돌파했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챔프전 무대를 밟았지만 더 큰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SK와 치른 7전 4승제의 챔프전에서 처음 3경기를 이겼지만 이후 내리 3경기를 내주며 사상 첫 리버스 스윕의 위기에 빠진 것.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가며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LG는 운명의 7차전에서 결국 승리하며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었다. 조 감독은 “7차전을 하루 앞두고 간단히 훈련을 했는데 선수들 표정이 너무 밝았다. 긴장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라며 “우리 젊은 선수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회복력이 빠르더라. 우리 팀의 미래는 이 선수들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현재 분위기를 잘 유지해간다면 LG는 언제든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강팀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상현 LG 감독이 챔프전 우승을 확정지은 후 트로피를 앞에 두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조상현 LG 감독이 챔프전 우승을 확정지은 후 트로피를 앞에 두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우승은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있다. 우승을 위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져 줘야 한다. 조 감독은 “개인적으로 인복이 많은 것 같다. 농구를 시작한 후부터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지난 시즌 우승의 경우엔 선수들 및 코칭스태프, 그리고 응원해주신 팬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특히 현재 예능인으로 팔방미인처럼 활동하고 있는 서장훈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는 “선수 때도, 코치를 할 때도 (서)장훈이 형이 격려를 많이 해 주셨다. ‘운동은 즐기는 게 아니라’는 가치관도 비슷하다”라며 “올해 플레이오프 때도 만나서, 또 전화로 여러 좋은 말씀과 조언을 해 주셨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일 텐데 세심하게 신경 써 주는 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연세대 시절 그의 스승이던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도 시즌 내내 그에게 틈날 때마다 조언을 건넸다.

조상현 LG 감독에게 애완견 조던은 영혼의 동반자나 마찬가지다. 조상현 제공

조상현 LG 감독에게 애완견 조던은 영혼의 동반자나 마찬가지다. 조상현 제공

그가 또 누구보다 감사하게 생각하는 존재는 애완견 ‘조던(3)’이다. 조 감독 가족은 3년 전 코카 스패니얼 종 유기견의 새끼를 분양받았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농구 황제’로 군림했던 마이클 조던의 이름을 땄다.연고지인 경남 창원에 주로 머무는 조 감독은 서울 집에 올라올 때만 조던을 만난다. 조 감독은 “마치 아들 같다. (조)던이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스트레스 제로다. 이긴 날이건 진 날이건 언제든 반겨준다. 삶의 원동력같은 존재다”라고 했다.

긴 시즌을 끝낸 후 조 감독은 조던과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경기 파주나 양주 등 강아지 운동장이 있는 곳에 조던을 데리고 가 함께 놀았다. 강아지 출입이 가능한 펜션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뜨거운 날씨를 피해 저녁에는 서울 남산으로, 월드컵 공원으로 산책도 다녔다. 조 감독은 “조던이 우리 집에 온 후 내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예전 비시즌에는 술 약속, 저녁 약속을 많이 잡았다. 하지만 요즘은 조던과 함께 하기 위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웃었다. 그는 “유기견이라서 그런지 사람을 무서워하고 다른 강아지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라며 “그래서 더욱 함께 함께 있어 주려고 한다”라고 했다.

조상현 LG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조상현 LG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조 감독의 또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은 운동이다. 은퇴 후에도 몸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는 조 감독은 시즌 때는 오전 6시 전에 일어나 두 시간가량 운동을 한 후 체육관으로 출근한다. 자전거 등 유산소 운동 1시간, 근력 운동을 1시간 한다. 조 감독은 “하루 24시간 중 두 시간은 내 몸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에 좋지도 않은 술은 몇 시간이고 앉아서 마시지 않나.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인 것 같다”고 했다.

선수 시절부터 ‘바른 생활’ 사나이였던 그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도자로서도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짧은 휴식기가 끝나고 LG는 21일부터 다시 팀 훈련을 시작했다. 조 감독은 “코트에 있는 게 가장 즐겁지만 감독이란 자리 또한 영원할 수 없다. 하지만 팀을 맡고 있는 한은 착실히 잘 준비해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어디에 있건 농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먼 미래에는 유소년들을 지도하는 꿈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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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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