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던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동 전쟁 발발 이후 나프타 수급난 장기화로 ‘결정타’를 맞았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국가 기간산업인 석유화학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된 만큼 체질개선 뒤 빠르게 산업 재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프타 수급난에 “공장 못돌려 인원 줄인다”
이날 둘러본 대산산단 내부는 규모에 비해 인적이 드물었다. 공장 사이를 오가며 가동 상황을 점검하는 인력을 찾기 드물었고, 산단 주변에 늘어서 제품을 싣기 위해 기다리는 화물차도 눈에 띄지 않았다. 몇년 전만 해도 서산 시내에서 대산산단까지 오는 도로가 출퇴근 인력과 제품을 실어나르는 화물차로 꽉 막혀 최소 1시간이 걸렸는데, 최근엔 40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다.대산산단에서 석유화학설비 유지관리·정비를 맡는 대기업 협력의 한 임원은 취재진에게 “원래 회사 직원이 70명 정도였는데, 일감을 주는 석유화학 기업들의 생산량이 줄면서 현재 53명으로 줄었다”며 “앞으로 직원을 37명까지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임원은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인한 원료 수급 문제가 침체가 이어져 온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 결정타가 됐다고도 했다. 그는 “(전쟁 전인) 2월까지는 나프타분해시설(NCC)의 생산량을 낮춰 운영하더라도 최소한 공장은 돌아가니 일거리가 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다른 석화 산업단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남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에서 석유화학 제품을 포장·출하하는 기업을 운영하는 최경남 씨는 “석유화학 공장 가동률 하락과 직결되는 포장 협력사 매출이 평시대비 30% 떨어졌다”며 “기초유분을 가공해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도 원료 수급 문제로 가동률이 50% 수준까지 내려온 상태”라고 전했다. 문제는 직원들이 대부분 떠나고 협력사가 문을 닫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경우다. 그러면 석유화학을 둘러싼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며 다시 복구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과 자금이 든다. 최 씨는 “지금처럼 석유화학 산업구조 전반이 약화된 상태로는 다시 수요가 발생했을 때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석화는 기간산업…활성화 방안 필요”
3월 이후 계속되고 있는 중동 전쟁으로 석유화학 설비 가동이 멈추자 피해는 건설, 의료, 생필품 등 여러 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건설업계에선 페인트와 단열재, 방수재, 마감재 등 주요 원자재가 이달 말 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의료계에선 주사기, 수액 주머니, 의료용 장갑 유통에 차질이 생겼다. 종량제봉투와 일회용기 등 생활용품 품귀 현상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나서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7개 석유화학 기초 유분의 매점매석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석유화학 산업이 필수불가결한 국가 기간산업임을 일깨워 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에 가격 경쟁력이 뒤처지며 일각에선 ‘사업 철수’ 목소리까지 나온 바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한국 화학 산업계가 2012년 요소 생산을 전면 포기하고 중국 의존도를 높인 결과가 2021년 요소수 대란”이라며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통해 감산을 추진하더라도 범용부터 고부가가치제품까지 각 분야에서의 내수 기반을 끝까지 사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지정학적 갈등이 깊어지며 공급망이 무기화되는 상황에서 석유화학 산업재편에 속도를 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운영 효율성을 높여 기간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제고해야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NCC 생산 규모(연 1470만 t)를 최대 25%(370만 t) 줄이는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산산단과 여수산단에선 사업 재편안이 승인됐지만 울산산단은 에쓰오일이 올해 상업 가동을 목표로 신규 건설 중인 ‘샤힌 프로젝트’의 감산 여부를 두고 기업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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