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찾은 서울 강남의 한 스타벅스 매장. ‘5·18 탱크데이’ 마케팅으로 논란이 된 탱크 텀블러는 MD 진열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역사적 사건을 희화화했다는 문제가 불거지자 본사 차원에서 제품을 싹 다 빼버린 것이다. 매장 관계자는 “해당 제품은 진열에서 제외하고 판매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 ‘마케팅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 민심을 외면한 광고를 진행했다가 비판이 쏟아지면 서둘러 판매를 중단하는 식의 땜질 대응이 반복되고 있다. ‘관심만 끌면 된다’는 식의 마케팅 공식이 바뀌지 않으면 언제든 참사가 재발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신사·GS25도 논란 휘말려
유통업계의 마케팅 논란은 이번 스타벅스가 처음은 아니다. 무신사는 2019년 SNS에 광고를 올려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카피를 써 논란이 됐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당시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발언을 패러디해 국가 폭력을 희화화했다는 여론이 확산했다. 무신사는 뒤늦게 사과하고 게시물을 삭제했지만 ‘무신사 감수성’에 대한 불신을 샀다.
GS25는 2021년 모바일 앱에 올린 이벤트 포스터로 곤욕을 치렀다. 소시지를 잡는 손 모양이 남성 혐오 사이트의 로고와 비슷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GS 계열사 전체를 불매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확산했다. GS25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관련 임원을 보직 해임했다.
이번 스타벅스 논란은 밈 활용 광고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민감한 한국 현대사와 젠더 이슈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가운데 이를 보완할 시스템이 없었던 결과란 지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실무자가 커뮤니티 감각에 익숙한 2030세대일수록 ‘재미’나 ‘임팩트’에 집중한다”며 “밈에 얹혀 있는 역사와 인권의 문맥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비자 감수성과 간극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이 화제성을 중심으로 마케팅 성과지표(KPI)를 강화하면서 마케팅 조직이 ‘무관심’보다 ‘논란’을 택할 유인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전 리스크를 촘촘히 검수하는 데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실무자 선에서 의사결정이 끝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위험한 표현을 걸러낼 제동 장치는 부족한데 화제성 경쟁이라는 가속 페달만 밟는 구조라는 얘기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종 검수 단계의 부재가 문제”라며 “소비자 감수성을 확인할 시스템이 없었던 게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스벅 기프티콘 환불 선언’도
이날 SNS에선 스타벅스 제품을 파손하거나 불매를 선언하는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스타벅스 머그잔을 지퍼백에 넣어 망치로 산산조각 내거나 텀블러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영상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기프티콘을 모두 환불하겠다’는 식의 글도 줄줄이 게시됐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스타벅스는 사업 구조상 건물주와 협업하는 사례가 많은데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선을 넘은 마케팅으로 브랜드 가치가 훼손된 사례가 많다. 글로벌 의류 브랜드인 H&M은 ‘정글의 원숭이’라는 문구가 적힌 의류를 흑인 아동에게 입힌 광고를 냈다가 전 세계적인 불매 운동이 일었다. 이탈리아 브랜드 돌체앤가바나(D&G)는 중국인 모델이 젓가락으로 피자를 서툴게 먹는 광고를 내보냈다가 중국 문화를 비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상하이 패션쇼가 취소되고, 알리바바 등 주요 중국계 커머스 플랫폼에서 D&G 제품이 대거 퇴출됐다.
고은이/류은혁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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