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는 '2035 NDC'…정부·기업, 시각차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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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헌재·ICJ의 법적 기준에 따라 최소 61% 이상의 감축이 불가피하지만, 산업계는 기술·재정 여건 미비로 현실성이 없다며 뚜렷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한경ESG] 커버 스토리 - 불붙은 NDC 속도 논쟁
① 총론

10월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거리에서 열린 ‘제3회 지구하다 페스티벌 및 토크콘서트’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기후환경연합 회원들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65% 수립’을 촉구하는 손 팻말을 들고 있다. / 한국경제DB

10월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거리에서 열린 ‘제3회 지구하다 페스티벌 및 토크콘서트’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기후환경연합 회원들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65% 수립’을 촉구하는 손 팻말을 들고 있다. / 한국경제DB

정부가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확정을 앞둔 가운데 산업계 전반에서 깊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현재 48%, 53%, 61%, 65% 등 4가지 감축 시나리오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하고 있다. 48%안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최대 현실안, 53%안은 2050 탄소중립까지 단순 직선 경로, 61%안은 IPCC 1.5℃ 시나리오 기준, 65%안은 시민단체가 제시한 ‘탄소예산’ 기반 목표다. 정부는 11~12월 중 국제무대에서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법적 기준을 고려할 때 61% 이상 감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문제는 이를 달성할 현실적 로드맵과 재정·기술 지원 체계가 아직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헌재와 ICJ가 모두 한국의 감축 의무를 법‘ 적·국제적 의무’로 명시한 만큼 정부는 최소 61% 이상의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하지만, 산업계는 “기술 여건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결국 ‘기후 대응의 당위’와 산‘ 업 경쟁력 유지’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속도 내는 '2035 NDC'…정부·기업, 시각차 '뚜렷'

헌재·ICJ 온실가스 감축은 의무’ vs 산업계 생산 위축

지난 5월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일부 조항을 헌법 불합치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2031~2049년 세부 감축 경로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향후 NDC 수립 시 국가가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감축 계획을 제시해야함을 명문화한 판결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도 7월에 채택한 ‘기후변화 관련 권고적 의견’에서 각국의 NDC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의 1.5℃ 목표 달성에 부합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한국이 2018년 대비 최소 61.2%를 감축해야 국제적 기준을 충족한다고 분석한다.

플랜1.5 최창민 변호사는 “헌재의 판결과 ICJ의 권고를 종합하면 65% 감축 수준이 사실상 법적 기준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산업계는 이 같은 감축 시나리오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 목표’라고 지적한다. 특히 철강·시멘트·정유·석유화학 등 주요 배출 업종은 감축 부담이 집중되며 생산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철강업계는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생산이 줄어 배출이 감소한 것”이라며 “수소환원제철 실증 규모가 기존 100만 톤에서 30만 톤으로 축소되는 등 오히려 기술개발이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호소한다. 수소 가격은 여전히 킬로그램당 6달러 수준으로, 산업계가 목표로 하는 2달러 이하로 떨어지려면 공급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석유화학업계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납사분해시설(NCC)의 전기·수소 기반 전환안이 제시됐지만, 글로벌 공급 과잉과 구조조정 여파로 생산량 자체가 줄면서 기준 배출량(BAU) 설정이 현실과 괴리돼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시멘트 산업 역시 건설 경기의 침체로 생산이 급감했고, 단위당 배출 저감 속도는 미미하다.

산업계 측은 “감축률이 높아질수록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이익 감소와 고용 축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며 “생산량 감축은 곧 산업 포기”라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철강 분야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기존 고로 공정보다 최대 69% 비용이 높고, 탄소 1톤 감축에 최대 239달러가 소요된다. 석유화학업계의 전기가열로나 메탄열분해 공정도 기존 대비 2~3배의 비용 상승이 예상된다. 업계는 정부의 직접적 지원 없이는 감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정부는 규제자가 아니라 산업 전환의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며 “기업의 혁신 투자가 끊기지 않도록 리스크를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다. 인력, 자금, 정보 접근성이 모두 부족해 자체 감축 로드맵조차 수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한상의는 2012년부터 온실가스 감축연구회를 운영해왔지만, 정부의 재정적·기술적 지원이 없이는 실질적 전환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들은 단순한 설비 개선이 아니라 공정 전환, 신기술 도입 등 전면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제 감면, 보증, 전환금융 등 실질적 수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에너지 집약적 하청 구조에 속해 있어 상위 기업의 감축 압력이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속도 내는 '2035 NDC'…정부·기업, 시각차 '뚜렷'

EU는 95%, 독일은 2045년…한국, NDC 균형점 찾을까

해외 주요 국가는 이미 ‘감축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어떻게 법적으로 담보할 것인가’의 단계로 들어섰다는 점도 한국 논의에 압박을 더한다.

유럽연합(EU)은 유‘ 럽기후법’에 따라 독립 과학 자문 기구인 유럽기후변화과학자문위원회(ESABCC)
를 두고, 전 세계가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남은 탄소예산을 먼저 확정한 뒤 이를 EU몫으로 공정 배분하는 방식으로 자체 탄소예산을 산정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배출 책임, 경제적 역량, 형평성 등이 모두 고려된다. 그다음 ‘EU가 쓸 수 있는 탄소 총량’ 안에서 2030~2050년 배출 허용 한도를 설계하고 역산해 2040년까지 EU 전체 배출을 약 90~95% 줄여야 한다는 권고안을 도출했다. 이는 ‘2050년 탄소중립을 향해 완만하게 감축’하는 기존 직선형(선형 감축) 경로보다 초반 감속을 훨씬 더 가파르게 배치한 이른바 아‘ 래로 볼록’ 경로다.

EU 집행위원회는 실제 정책에서 산업계 수용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최대 80% 감축안(선형 감축안)을 채택하지 않고, 과학과 탄소예산에 부합하는 90~95% 감축안을 공식 경로로 삼았다. 다시 말해 EU는 감축률을 정치적으로 정해놓고 명분을 찾는 방식이 아니라 IPCC가 제시한 1.5℃ 한도, 전지구적 탄소예산, EU 몫의 탄소예산, 연도별 감축 경로를 일관된 사슬로 제도화한 것이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요구한 ‘과학적 사실과 국제기준에 근거한 목표’가 무엇인지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선례라는 평가다.

그럼에도 NDC 달성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산업 부문 배출이 2040년 이후 수소환원제철·CCUS 등 혁신기술의 상용화 단계에서야 본격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2035년 목표는 단기 감축 경쟁이 아니라 2050 탄소중립으로 가는 경로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하는 분기점이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감축목표를 법적으로 강제할 필요는 있지만, 현실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목표는 산업 기반을 흔들 수 있으며 기술개발, 인력 양성, 인프라 확충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단순히 감축률만 상향하고 기업 자구노력에 맡겨서는 실질 감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탄소감축을 새로운 산업 전략이자 국가경쟁력의 시험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U의 ‘그린딜 산업계획’,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일본의 ‘GX(녹색 전환)’ 모두 감축목표와 산업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배출권거래제 배출권 가격이 톤당 1만 원 수준으로 세계 최저권에 머물러 기업에 충분한 감축 유인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비중 역시 2030년 목표치조차 OECD(경제
협력개발기구) 최하위권에 머무르는 등(태양광·풍력 중심) 에너지 전환 기반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

이미경 한경ESG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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