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없는 목관, 바닥에 놓였다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 붉은 제의를 입은 추기경단이 도열해 순서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누운 성당의 관에 예를 갖추는 것으로 장례 절차가 시작됐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누운 목관이 추기경단이 양 옆으로 도열한 가운데 성당 밖으로 천천히 운구됐다. 성당과 광장에 모인 신자들이 박수를 쳤다. 이탈리아에서는 장례식 때 고인의 명복을 빌며 박수를 치는 관습이 있다.
관이 성당 문 밖으로 나오자 10시 7분 경 성가대가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는 내용의 입당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장례 절차의 핵심인 장례미사의 공식적인 시작이다. 성당 광장 앞에 마련된 특설 제대 앞 바닥에 목관이 놓였다. ‘낮은 곳에 임하라’는 교리에 따라 교황 장례미사 때 교황의 관은 바닥에 놓인다.미사는 라틴어로 진행됐다. 교황의 목관을 성당 앞으로 옮기는 의식을 제외하고는 통상의 미사와 형식적 차이가 없었다.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고백의 기도’를 읊었고, 이어 성가대가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는 자비의 기도를 노래로 불렀다.
●형식과 권위를 걷어낸 교황신자들과 사제가 성경을 봉독(奉讀)하는 ‘말씀의 전례’ 때 독서자가 성경을 읽는 ‘독서’는 제1독서가 영어로, 제2독서가 이탈리아어로 각각 봉독됐다. 이 독서를 읽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신학을 수 년간 공부하고 ‘독서직’을 받아야 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런 사람이 적어 일반 신자들이 독서를 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허용해 왔다. 2022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예외’를 철폐하고 이 독서직을 평신도에게도 공식적으로 수여할 수 있도록 했다.조반니 추기경은 또 “교황은 특유의 언어로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언제나 빛을 비추려 하셨다”며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도 형식에 얽메이지 않고 다가가 세계의 불안과 고통을 진정으로 함께 나누며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신 분”이라고 평했다. “교회는 야전 병원”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며 교회가 신분을 따지지 않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프란치스고 교황은 마지막까지도 “전쟁을 멈추라”는 메시지를 내는 등 전 세계의 갈등과 분열에 관심을 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의 이민자 추방 정책에 대해서도 강한 어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기도 했고, 중동을 방문할 당시 예루살렘이 있는 이스라엘보다도 팔레스타인을 먼저 방문하는 ‘파격 행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2021년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라크를 방문해 당시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이던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를 직접 만나 회담을 하기도 했다. 조반니 추기경은 강론에서 “교황의 이라크 방문은 상처받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연고를 발라주는 방문”이라고 평했다.
조반니 추기경은 강론을 마무리하며 “교황께서 이제는 이 교회의 발코니에서 하셨던 것처럼 전 세계에 강복을 내리고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평범한 장례, 장식없는 묘비다만 영성체 예식이 끝난 이후 성가대는 가톨릭 성인(聖人)들에게 교황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내용의 ‘성인 호칭 기도’를 찬송가로 부르는 절차가 추가되는 등 일부 예식이 추가된다. 일반 가톨릭 신자의 통상적인 장례미사는 영성체 예식 이후 성수를 뿌리고 분향을 하는 ‘고별식’이 이어진다. 교황의 장례 미사에는 ‘영성체 예식’과 ‘고별식’ 사이에 의식 한 단계가 추가된 차이가 있다.
고별식이 끝나자 광장에는 다시 박수가 쏟아졌다. 추기경단이 줄지어 성당 안으로 퇴장하고, 관의 운구가 다시 시작됐다. 운구자들이 들어보인 관에는 큰 십자가와 예수회의 상징만 그려져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묘가 있는 산타마리아 대성당은 바티칸이 아닌 이탈리아 로마에 있다. 102년 만에 바티칸이 아닌 곳에 안치되는 교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에 마지막으로 바티칸 바깥에 안치된 교황은 1878년 즉위해 1903년 선종한 레오 13세 교황(선종 당시 93세)으로 로마의 산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 안치됐다.
교황의 무덤 역시 소박하게 제작됐다. 교황의 세례명인 ‘프란치스코(franciscus)’와 상징 십자가 외에 아무 것도 장식돼있지 않다. ‘교황(papa)’이라는 글자도 없다. 기존에는 안장 예식 때 교황은 입관을 두 번 더 거쳤다. 장례미사 때 안치된 목관을 납관에 다시 한 번 안치하고, 이 관을 또 다시 참나무관에 안치한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장례 절차를 간소화하는 규칙을 발표하고 3중관 절차를 폐지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