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인문학으로 세상 읽기]내가 베푼 ‘호의’가 타인의 삶을 ‘호위’한다면…

4 days ago 12

조해진 작가의 소설 ‘빛과 멜로디’
선의가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 다뤄
더 나은 사회 만들겠다는 믿음으로
전쟁터에서도 위험 감수하며 연대

소설 ‘빛의 호위’에서 철거 지역에서 혼자 살던 소녀는 우연한 기회로 학교 같은 반 소년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20년 뒤 재회한다. 타인을 향한 도움은 때로는 ‘호위무사’처럼 누군가를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설 ‘빛의 호위’에서 철거 지역에서 혼자 살던 소녀는 우연한 기회로 학교 같은 반 소년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20년 뒤 재회한다. 타인을 향한 도움은 때로는 ‘호위무사’처럼 누군가를 살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타인에게 위로와 환대를 받은 기억이 있나요. 타인의 선의로 숨이 쉬어지고 다시금 힘을 냈던 순간들요. 아이가 백일이 지났을 무렵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우는 아이 곁을 지키던 힘든 날에 직장 선배에게 큰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몰라 어려워하던 저에게 선배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다른 후배에게 그대로 해주라’는 답변을 줬습니다. 선의가 연결되면 보다 좋은 사회가 될 거라면서요. 그 선배의 말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걸 보면, 그 순간에 받은 위로와 단단한 연대의 기억이 지금도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선의가 호위를 해주는 순간

조해진 작가의 소설 ‘빛의 호위’는 2017년에 출간된 소설집 ‘빛의 호위’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 소설입니다. 철거 지역의 낡은 집에서 혼자 살아가던 ‘권은’이라는 소녀가 우연한 기회로 같은 반 소년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20년 만에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재회하면서 과거의 사건을 조망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나’는 권은이 혼자서 근근이 버티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가끔씩 도와주러 갑니다. 타인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던 소년의 마음을 소설은 담담한 회상으로 보여줍니다. 우연히 발견한 장롱 속 카메라를 훔쳐서 주었던 것은 그것을 팔아 ‘살았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네가 살았으면 좋겠는 마음. 그렇게 뿌린 씨앗은 권은에게 날아들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싹을 틔웁니다. 무심코 찍어 본 카메라는 ‘숨겨져 있던 세상의 빛 무더기’를 보여주었고, 소녀는 더 많은 빛을 찍기 위해 세상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사진작가가 됩니다.

과거의 선의가 한 사람의 삶을 바꾸게 했음을 주인공이 깨닫게 될 즈음에는 독자도 뜨거운 감동을 느낍니다. 그리고 때로는 한 사람의 도움이 ‘호위무사’처럼 한 사람을 살리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는 메시지는 우리가 ‘외면하는 삶’에서 ‘들여다보는 삶’으로 변하기를 촉구합니다. 생명의 힘은 타인을 돌보는 한 사람의 작은 움직임에서 발아하는 것임을 보여주면서요.

‘빛의 호위’를 장편으로 만든 소설 ‘빛과 멜로디’

조 작가는 ‘빛의 호위’를 각색해 2024년 ‘빛과 멜로디’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합니다. 권은의 이야기를 커다란 줄기로 가져오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하나의 가지로 뻗어 나가 우리가 어떤 것들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전쟁의 사슬에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무구한 고통의 순환을 보여주면서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알려줍니다.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전쟁의 참상을 다각도로 조망하는 와중에도 선의를 베푸는 이들의 모습을 곳곳에 뿌려 두었습니다.

배고픔과 공포에 잠식당한 순간에도 타인을 돌보고, 위험을 감수하며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의 실존을 알립니다. 인간의 연대가 가장 빛나게 발현되는 곳은 가장 어둡고 아픈 곳, 전쟁의 현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네가 살았으면 좋겠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혼자 남은 옥사나가 떠난 나스차를, 영국인 애나가 시리아 여성 살마를 생각합니다.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많은 이야기 나누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

‘빛과 멜로디’를 읽은 학생들은 이 소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생들은 이제 전쟁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외면하기 힘들겠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관심을 갖고, 선의의 연대를 구축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도 드러냈습니다. 세상의 온갖 선의의 호위를 받으며 살고 있음을, 타인이 ‘살았으면 좋겠는 마음’을 지녔음을 재차 확인하면서요.

여러분도 소설을 완독하고 학생들이 만든 질문에 답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어떤 타인의 선의가 우리를 ‘호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토론 질문
① 타인의 극한의 고통을 기록하는 행위(촬영 등)는 진정한 의미의 연대인가요,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 방관적 태도에 불과한가요.

② 타인에게 받은 선의를 다시 다른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은 인간을 나아가게 하는 숭고한 원동력인가요, 아니면 희생하면서 갚아야만 하는 강박적 죄책감인가요.

③ 전쟁 같은 거대한 폭력 시스템 앞에서 개인의 작은 선의는 실질적인 힘이 있나요, 아니면 그저 자기 위안일 뿐인 미미한 행동인가요.

④ 안전과 규범을 우선시하는 사회의 합리적인 시선과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의 고통에 뛰어드는 연대 중 무엇이 옳은 걸까요.

⑤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나눌 수 있을까요.

토론 질문 발굴에는 세종과학고 윤담규 강태욱 최주안 김선우 최용재 진영하 김강민 학생이 참여했습니다.

조현정 세종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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