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오늘이었어?”… 반복되면 건망증 아닐 수도[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5 hours ago 7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뇌 노화는 40대부터 본격적 진행
일회성이거나 힌트 듣고 기억나면, 인지장애보다는 건망증에 가까워
알려줘도 못 떠올리면 검사 권고… 외국어-악기 연주 등 새로운 도전
뇌 기능 강화해 노화 지연에 도움… 근력 운동도 뇌에 좋은 물질 분비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40대부터 뇌의 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뇌 저장고’를 늘리는 생활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건망증이 반복되면 인지 장애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40대부터 뇌의 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뇌 저장고’를 늘리는 생활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건망증이 반복되면 인지 장애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박정철 씨(가명)는 50대로 접어든 후 자주 깜빡깜빡한다. 머릿속이 뿌연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나마 큰 낭패를 본 적은 없다. 다만 얼마 전 일이 마음에 걸린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중이었다. 가끔 연락하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가 “어디까지 왔냐?”라고 물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 박 씨는 “급한 일이 생겨서 가지 못할 것 같다. 미리 연락하려고 했는데 너무 정신이 없었다”라고 둘러댔다.

단순한 건망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박 씨는 치매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중년 세대라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정말 치매의 전조 증세일까.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에게 물어봤다.

● 마흔 넘으니 깜빡깜빡… 이유가 있다

나이가 들면 뇌도 늙는다. 건망증은 ‘뇌의 노화’로 발생한다. 사실 건망증만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 몸의 사령탑인 뇌가 노화하면 일상생활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가령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거나 주차가 어려워진다. 결정을 내리기도 힘들고, 내리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성격이 더 꼬장꼬장해지거나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60대 이후에 흔하지만, 40대부터 시작될 수 있다. 서 교수는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60대 이후에야 뇌의 노화를 의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40대부터 뇌세포가 위축되고 대뇌피질이 얇아지면서 뇌의 노화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뇌의 바깥층을 대뇌피질이라고 한다. 여러 영역으로 나누는데, 전두엽 공간이 가장 넓다. 전두엽은 기억, 사고, 감정 등을 총괄한다. 노화로 전두엽 부피가 줄어들고 기능이 떨어지면 건망증이 심해지고, 제대로 기획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뇌의 부피가 줄어들면 혈류량도 감소한다. 뇌는 전체 장기의 2% 정도이지만 에너지의 20% 이상을 쓴다. 혈류량이 감소하면 에너지를 덜 받기 때문에 정보처리 속도도 늦어진다. 사소한 것들을 곧바로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게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증세는 모두 병적인 것일까. 서 교수는 “중년 이후 건망증은 대부분 뇌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병적인 증세를 잘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건망증일까, 인지 장애일까

건망증이 악화하면 인지 장애, 인지 장애가 악화하면 치매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 가운데 건망증과 가벼운 인지 장애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서 교수는 “깜빡하는 상황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느냐, 즉 반복성 여부가 건망증과 인지 장애를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힌트를 줬을 때 “그랬었지”라며 과거 사실을 기억해 낸다면 건망증에 가깝다. 이 기준에 따르면 박 씨는 건망증 단계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잊는 일을 반복하지 않았고, 친구가 알려주니 바로 실수를 알아차렸기 때문.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고 대신 휴대전화를 안에 둔 채로 문을 닫았는데 완전히 까먹었다고 치자. 약속을 잊는 것보다 사안이 심각해 보일 수 있다. 인지 장애에 가까울까. 서 교수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반복하느냐, 힌트를 주면 알아차리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했다.

약속 잊기를 반복하며, 그 사실을 일깨워줘도 기억해 내지 못한다면 인지 장애 단계로 볼 수 있다. 인지 장애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서 교수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수록 ‘병적인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가령 치매 단계라면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우길 수도 있다.

인지 장애 단계에 근접하면 성격이 변하는 경우가 많다. 서 교수는 “대범하던 사람이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화를 잘 낸다면 전문가를 만나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음식 맛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서 교수는 “가족들이 주의를 기울여야 이런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기억력 소실에 대한 걱정 버려야

건망증 단계인 데도 치매 걱정에 병원을 찾는 이가 적잖다. 뇌 건강을 해치는 행동이다. 서 교수는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곱씹는 습관은 인지 장애나 치매의 가장 나쁜 인자”라고 강조했다. ‘기억력이 더 떨어지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부터 멈춰야 한다는 뜻이다.

건망증 단계에서는 뇌를 자극할 수 있도록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좋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몰입하면 새로운 뇌신경 세포가 만들어지거나 도파민 같은 호르몬이 분비돼 인지 기능이 개선된다. 서 교수는 “외국어 공부나 악기 연주 같은 게 좋은데, 정말 즐기면서 도전하는 기분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매일 가던 길을 바꿔 다른 길을 찾아보는 등 일상에서부터 새로운 것을 찾는 방법도 괜찮다.

다만 인지 장애 단계 이후라면, 새로운 도전은 권장되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뇌가 새로운 도전을 스트레스로 여기기 때문이다. 뇌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메모하고 물건을 같은 장소에 두는 식으로 ‘생활 루틴’을 만들어 실천하는 게 좋다.

저체중이라면 살을 찌우는 게 좋다. 서 교수는 “저체중은 뇌 노화를 유발한다. 게다가 저체중일 때 치매 발생률이나 사망률 모두 높다”고 설명했다. 물론 비만이 좋을 수는 없다. 배 둘레가 넓어지는, 이른바 내장 비만일 때도 저체중일 때와 결과가 같다. 다만 허벅지나 팔다리 피하지방에 있는 렙틴 성분은 뇌 노화를 막아준다. 지방도 가려서 빼야 한다는 이야기다.

● 생활 습관 개선이 정답

뇌 노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뇌의 맷집을 키우면 된다. 서 교수는 “이를 뇌의 ‘인지 예비능’이라고 하는데, 노화에 대비해 뇌의 저장고를 넉넉히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40대 이후 꼭 필요한 습관으론 어떤 게 있을까.

일단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한다. 삼시세끼가 좋지만 평상시에 두 끼만 먹는다면 그 습관이라도 지키는 게 좋다. 폭식과 과식은 피한다. 두부, 콩, 등푸른생선, 살코기를 비롯해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자. 서 교수는 “단백질에 있는 성분이 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뇌에 좋다는, 이른바 ‘뇌 영양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건강기능식품이다. 뇌 기능을 개선하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되도록 매주 5회, 30분 이상 운동하자. 옆 사람과 얘기할 때 숨 차는 강도로 운동하는 것이 좋다. 하루에 7500보 이상은 채운다. 근력 운동도 뇌 건강에 좋다. 근육에서 뇌 기능을 강화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나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 특히 여자의 경우 허벅지 근육이 발달하면 치매 예방 효과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뇌를 이완시키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자. 좋지 않은 생각은 털어 버려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지인들을 자주 만나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 요즘 짧은 포맷의 영상 콘텐츠가 인기인데, 일방적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 이런 형식은 뇌 기능을 떨어뜨린다. 모바일 게임을 하더라도 머리를 많이 쓰는 걸 택하자. 중년 이후에 술과 담배는 되도록 끊어야 한다.

뇌는 심장, 폐, 간, 콩팥 등 모든 장기와 연관돼 있다. 장기가 손상되면 뇌도 다친다. 서 교수는 “여러 연구 결과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도 만성질환을 잘 관리하면 뇌 기능이 유지됐다. 만성질환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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