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인하, 부자증세… 지지율 하락에 트럼프 ‘급 좌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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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사회복지장관(왼쪽)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약값 인하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내용과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사회복지장관(왼쪽)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약값 인하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내용과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AP 뉴시스
“‘뚱뚱이 주사(비만치료제)’가 미국보다 유럽에서 훨씬 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제약사를 상대로 미국에서 판매되는 의약품 값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낮출 것을 요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외국과 제약사들로부터 ‘호구(sucker)’ 취급을 받으며 비싼 약 값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약사의 로비 실력은 놀랍지만 나와 공화당은 오직 옳은 일만을 할 것”이라고 했다.

고율 관세 정책 등에 따른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약값 인하와 부유층 증세 등 좌파 성향 정책 추진에 나섰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얻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란 평가가 나온다.

● 약값 인하, 부자 증세로 ‘좌클릭’

의료보험 체계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미국에선 소비자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싼 약값을 지불한다. 이에 따라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버몬트) 등 민주당 내 강경 좌파 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약값 인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제약업체의 로비 등에 막혀 수십년째 큰 진전이 없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해 온 샌더스 의원은 이날 행정명령에 대해선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 동의한다. 미국인이 가장 비싼 값을 지불하는 현재의 상황은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고소득층 증세도 민주당의 정책 의제를 채택한 사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 1년에 250만 달러(약 35억 원) 이상 버는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현 37%에서 39.7%로 2.7%포인트 올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한 상·하원에서 감세 법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이런 방향과 자칫 역행할 수 있는 일부 증세안을 제안한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대규모 감세를 공약했다. 이에 따라 집권 1기 때 도입한 감세 법안을 연장하고, 팁과 추가 근무수당, 복지혜택에 대한 면세를 새로 도입하는 이른바 ‘크고 아름다운 법안’의 의회 통과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감세에 따른 재정 악화를 우려하는 공화당 강경파가 복지재정 감축 등을 요구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고소득층 증세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포퓰리즘 성향 강해지고 있어”

약값 낮추기와 부자 증세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좌클릭’을 근본적인 정책 기조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대중에 호소해 표심을 얻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분석이 많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포퓰리즘 성향을 점점 더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기자회견에서도 ‘친한 유력 기업인’의 일화를 들려주며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 기업인에 따르면) 비만 치료제를 프랑스 파리에서 맞으면 88달러, 뉴욕에서 맞으면 1300달러가 든다고 한다”며 미국인이 부당하게 지나치게 높은 약값을 부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 그라운드워크콜레보라티브의 리즈 팬코티 정책국장은 “트럼프는 어떻게 하면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라며 “좌파 의제라도 표를 결집할 수 있다면 활용하는 것”이라고 FT에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취했다. 여성 유권자를 잡기 위해 임신중절에 대한 입장을 애매하게 유지했다. 또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해 소량의 마리화나 소지는 처벌하지 말자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재집권에 성공한 뒤엔 보수 지지층의 반발을 사지 않기 위해 이들 이슈와 관련된 언급 자체를 피하고 있다.

‘좌클릭’은 민주당이 공략할 수 있는 정책을 선점하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앞서 201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부자 감세와 저소득층 건강보험 축소를 집중 공격한 민주당에 하원을 내준 뼈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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