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256명이 헌법재판소를 찾았지만, 74명은 첫 심사에서 돌아서야 했다. 지난 3월 12일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된 후 3월 30일까지의 성적표다. 1·2차 사전심사를 거친 74건 전부가 각하라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각하 이유를 보면 청구 사유 자체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경우가 51건으로 전체의 69%에 달했고, 청구기간 도과가 16건(22%)으로 뒤를 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재판소원이 ‘억울한 판결을 다시 심사받는 절차’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헌재는 제4심 법원이 아니란 의미다. 한국보다 수십 년 앞서 재판소원 제도를 운용 중인 독일과 스페인 헌재의 판례는 통과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재판소원 문 연 뤼트, 한계 정한 헤크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판소원의 이론적 뿌리는 1958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뤼트 결정(Lüth-Urteil)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론인 에리히 뤼트가 나치 선전 영화를 제작한 감독 베이트 할란의 신작을 보이콧하자고 호소했다가 민사법원에서 패소하자 이 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고 헌재는 이를 인용했다. 핵심 논리는 간단하다. 기본권은 ‘모든 법 영역에 작동하는 객관적 가치질서’이기 때문에 법원이 판결할 때도 기본권 가치를 무시하면 헌법 위반이 된다는 것이다.
뤼트 결정이 재판소원의 문을 열었다면, 6년 뒤인 1964년 헤크 공식(Heck’sche Formel)은 그 문의 크기를 엄격히 제한했다. 특허출원 기록 열람 분쟁에서 주심이던 카를 헤크 재판관은 특허법원의 판단에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청구를 기각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결정에서 “사실관계 확정, 법률 해석, 재량 판단은 일반 법원의 전속 영역”이라며 헌재 개입은 법원이 헌법을 위반한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제도 시행 전 판결은 구제 안 돼
재판소원을 청구하려면 1단계로 형식 요건을 갖춰야 한다. 확정판결 후 30일 이내 청구, 모든 불복 절차 소진, 청구인 적격 등 세 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헌재 1·2차 사전심사에서 각하된 74건 중 청구기간 도과가 16건이었다.
재판취소 1호 사건에서 시리아 국적 외국인은 강제퇴거명령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뒤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청구인은 “개정 전 헌재법이 재판소원을 허용하지 않았으니 30일 기간을 지키지 못한 것은 정당한 사유”라고 주장했으나,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도 시행 이전에 확정된 판결은 사실상 구제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용 가능한 불복 수단을 모두 소진하지 않았다면 헌재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보충성 원칙’도 엄격히 적용됐다. 재판취소 2호 사건에서 납북귀환어부 유족들은 대법원 상고를 하지 않고 곧바로 헌재로 왔다. 소액사건은 상고 이유가 법으로 제한돼 사실상 상고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헌재는 상고 가능성 자체가 열려 있는 이상 이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보충성 원칙의 예외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며 각하했다.
헌법·법률 위반이 명백해야
헌재법 제68조 제3항은 청구 사유를 세 가지로 제한한다. 헌재 결정에 반하는 재판, 적법 절차 위반, 헌법·법률 위반이 명백한 경우가 그것이다. 1·2차 사전심사에서 각하된 74건 중 51건(69%)이 이 2단계에서 탈락했다.
실제 각하된 주장들을 보면 유형이 뚜렷하다.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로 재산권이 침해됐다’ ‘위법수집증거를 유죄 증거로 삼았다’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해 재판청구권이 침해됐다’ 등이다. 모두 법원의 사실 판단이나 소송 진행 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기본권 침해의 명백성을 소명하지 못한 것들이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스페인 헌법재판소 2023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이에 상응하는 단계의 각하율이 74%에 달한다. 특별한 헌법적 중요성을 인정받으려면 세 가지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헌법 해석을 위해 중요하거나, 헌법의 적용 및 일반적 효력을 위해 중요하거나, 기본권의 내용과 범위 확정에 기여하는 쟁점이어야 한다.
기본권 침해 ‘실질 인정’이 핵심
2단계를 통과하면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본안 심사가 시작된다. 법원이 판결하면서 기본권의 헌법적 가치와 의미를 오인하거나 정면으로 무시했는가가 핵심이다. 절차적 기본권이 문제된 2009년 스페인 사건에서 검찰은 절도 경범죄 피고인에게 벌금형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자택구금형을 선고했다. 헌재는 이를 단순한 양형 문제로 보지 않았다. 법원이 기소기관의 기능까지 흡수해 헌법이 설계한 권력 분리 원칙을 훼손했다는 것이 인용 이유였다.
단결권·협약자치가 쟁점이 된 2024년 독일 야간근무 수당 사건에서 연방노동법원은 단체협약의 수당 차등이 평등 원칙에 반한다며 직접 상향 조정을 명했다. 헌재는 평등 원칙 위반을 선언하는 것까지는 법원의 권한이지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약을 수정할 기회를 박탈하고 법원이 직접 법률관계를 형성한 것이 헌법 문제라고 봤다.
김정원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재판소원이 인용되려면 법원이 판결하면서 기본권의 의미와 가치를 오인하거나 무시했다는 것을 소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8 hours ago
4

![[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원유에서 나프타 처음 추출한 과학자 외젠 우드리](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4/05/133677281.4.jpg)
![[신문과 놀자!/미션 나의 문해력]종용(慫慂)하다, 종용(從容)하다](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4/05/133679401.1.jpg)
![[신문과 놀자!/어린이과학동아 별별과학백과]위험한 화재 현장… 소방관 대신 AI 로봇이 불 끈다](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4/05/133677291.4.jpg)







![[단독] '알파고 아버지' 10년 만에 방한…이세돌과 다시 만난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603/AA.43666527.1.jpg)
![[만화 그리는 의사들]〈398〉질염에 질 유산균이 진짜 효과 있나요?](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3/12/133510649.4.jpg)

!['하시4' 유지원, 군대 가지만 3주 훈련 후 민간인 복귀 "공중보건의사로 국방의 의무" [전문]](https://image.starnewskorea.com/cdn-cgi/image/f=auto,w=1200,h=1679,fit=cover,q=high,sharpen=2/21/2026/03/2026031811115911727_1.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