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이 없다”…‘이른둥이 가이드북’ 손 못 댄 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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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둥이, 국가가 책임져야①] 맞춤형 대책 내놓고는 예산 80억 미반영
고위험 산모·신생아 치료나 모자의료 전원·이송 등 “국가 미래 달린 일”

26일 한 인천의 한 병원 신생아실에 신생아들이 누워 있다. 2025.2.26/뉴스1

26일 한 인천의 한 병원 신생아실에 신생아들이 누워 있다. 2025.2.26/뉴스1
국내 최초 자연임신으로 다섯쌍둥이가 태어난 일을 계기로 “이른둥이의 건강한 성장을 돕겠다”며 맞춤형 대책을 내놨던 정부가 정작 예산이 모자라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른둥이 부모들은 이런 정책이 나왔는지 모를 만큼, 잘 알려지지도 않은 실정이다.

이른둥이 부모들의 최우선 요구로 꼽힌 ‘정책 가이드북’은 10억 원이 없어 관련 연구도, 제작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위 필수의료 분야 예산도 삭감돼 사업이 축소 운영되고 있다. 현장 의료진은 “우리 미래를 책임질 아기들의 치료 예산을 깎느냐”며 쓴소리를 이어갔다.

전체 출생아 중 이른둥이 12.2%…삼중고에 경제적 부담까지

이른둥이는 임신 기간이 37주 미만인 조산아로 태어나거나, 출생 당시 체중이 2.5㎏ 미만인 저체중출생아를 지칭한다. 지난 2023년 전체 출생아 중 저체중 출생아는 7.7%, 조산아는 9.9%로 전체 이른둥이 비율은 약 12.2%(2만 8000명)이다.

이른둥이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 치료받으며 상태가 안정된 뒤에야 퇴원할 수 있다. 고위험 이른둥이는 집중치료실 평균 입원 기간이 70.7일에 달한다. 퇴원 이후에도 합병증 예방과 치료, 발달 상태 확인 등을 위해 지속적인 진료가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일, 치료, 육아를 병행하는 삼중고에다가 발달치료·재활에 드는 경제적 부담을 감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출산, 치료, 발달, 양육 분야에 걸친 다각적 지원체계를 만든다는 취지 아래 지난해 12월 3일 ‘이른둥이 맞춤형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예산 갈등’ 정국으로 이른둥이 사업 예산 역시 상당수 반영되지 않았다. 이달 초 처리된 이번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통해서도 전무했다. 특히 의료진에 대한 보상과 이른둥이를 위한 의료비 지원 예산이 보건복지부 생각만큼 마련되지 않았다.

‘이른둥이 맞춤형 지원 대책 예산 미반영 규모’ ⓒ News1

‘이른둥이 맞춤형 지원 대책 예산 미반영 규모’ ⓒ News1
뉴스1은 복지부가 국회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이른둥이 맞춤형 지원 대책 예산 미반영 규모’ 자료를 확보해 분석했다. 우선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 치료 체계와 모자의료 전원·이송 협력체계 구축 등에 46억 4700만 원의 예산이 마련되지 않았다.

현행 최대 1000만 원인 의료비 지원 한도를 최대 2000만 원까지 상향하는 이른둥이 의료비 지원 사업에는 7억 8200만 원의 예산이 필요한 데다 전문 간호사가 이른둥이를 밀착 지원하는 지속관리 사업 예산이 복지부 기대와 달리 15억 9000만 원 적다.

질병관리청 주도의 이른둥이 대상 의료 연구·통계 예산도 9억 원 모자랄뿐더러, 이른둥이 가족에게 맞춤형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한다는 목표의 정책 정보 제공 사업 예산에는 10억 원이 필요했지만, 현재 한 푼도 없다. 이렇게 총 6개 사업에 80억 1900만 원이 모자란다.

예산 미비에 중지된 ‘정보 제공 사업’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등으로 보완 가능한 사업은 건보재정 투입을 결정했고, 예산이 반영되지 않은 사업에 대해 기금운용계획 변경 등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차후 추가경정예산안이 마련될 때나 내년 예산안에 이번 일을 감안해 적극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예산 미비를 이유로 손도 대지 않은 사업도 있어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복지부는 이른둥이에게 필요한 정책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가이드북을 11월까지 제작·배포한다는 계획이지만, 10억 원이 없다는 이유로 2월부터 진행됐어야 할 연구도 맡기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10월 복지부와 이른둥이 부모들과 가진 간담회나 뉴스1 취재에 응한 부모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꼽은 요구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시기별 필요한 발달 평가나 검사는 뭔지, 지원받을 서비스는 있는지 통합적으로 알려주는 게 절실하다는 의미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여러 동반 질환을 가지고 있는 9살 아들을 둔 한 보호자는 정부의 정보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일부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온라인 맘카페 회원들과 여러 병원 정보를 공유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이유에서다.

더군다나 상당수 이른둥이 가족은 정부의 이번 대책을 모르고 있었고, 복지부 관계자도 “일부 사업이 계획과 달리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둥이 가족은 물론 일반 의료기관도 정부 가이드라인을 영유아 검진 등에 활용 중인 해외 상황과 다르다.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져선 안 된다는 게 현장 진단이다. 윤영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신생아중환자실장)는 “어떻게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아기들을 치료하는데 예산을 삭감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지난해 12월 3일 공개된 ‘이른둥이 맞춤형 지원대책’ 중 이른둥이 맞춤 발달·정책 정보 제공 사업.(보건복지부 자료 갈무리)

지난해 12월 3일 공개된 ‘이른둥이 맞춤형 지원대책’ 중 이른둥이 맞춤 발달·정책 정보 제공 사업.(보건복지부 자료 갈무리)

윤 교수는 “미숙아는 발달 지연 위험이 높아 퇴원 후에도 지속적인 추적 관리가 중요하다. 가장 작은 생명들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일은 정책 방향성과 어긋난다”며 “발달과 건강에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지금은 출산율 저하와 국가적 위기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며 “(단순히) 단기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을 위한 기반이라는 인식이 정책 전반에 더 확고히 자리 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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