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지 못한 손해는 누구의 몫인가 [조대환의 영미계약법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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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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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배송, 멈춰버린 영업

온라인 쇼핑몰이 대규모 할인 행사를 앞두고 있다고 하자. 행사 당일 새벽, 핵심 서버에 장애가 발생하자 이를 복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품을 외부 업체에 보내 긴급 수리를 맡겼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배송 지연으로 준비했던 행사가 무산되어 막대한 매출 손실이 발생했다면, 손해는 모두 배송업체가 책임져야 할까?19세기 Hadley v. Baxendale 사건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대표적 판례이다. 제분소를 운영하던 Hadley 공장의 핵심 설비인 크랭크축이 고장 나면서 생산이 전면 중단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손상된 부품을 제조업자에게 보내 복제품을 만들고 다시 장착하기 위해 운송업자 Baxendale에게 운송을 의뢰했다.

그런데 부품의 운송은 지연됐고, 기간 동안 제분소는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생산은 전면 중단되었고 그로 인한 영업손실은 크게 확대되었다. 이에,

Hadley 운송업자 Baxendale 운송업자를 상대로 단순한 운송 지연에 따른 비용뿐 아니라,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인한 수익 손실까지 포함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사건에서 계약 위반으로 인한 손해 어느 범위까지 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Hadley 청구는 "당신이 제때 운송했더라면, 공장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인과관계의 논리만 놓고 보면 설득력이 있을 있다. 실제 배심원 역시 이러한 직관에 공감해 손실을 인정했다.

법원도 운송업자가 운송 지연 자체로 인해 통상적으로 발생할 있는 손해, 예컨대 추가 비용이나 일반적인 불편에 따른 손해는 배상 대상이 된다고 봤다.

그러나 제분소의 영업손실은 운송업자가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손해"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인한 영업손실과 같은 확대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책임이 없다고 보았다. 법원은 운송업자가 '제분소가 해당 크랭크축 하나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손해배상의 범위는 '예상되는 결과'

사진=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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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계약법상 19세기 전까지 계약위반에 대한 손해의 사정은 대체로 배심원의 재량으로 결정되었는데, 이러한 배심원의 평결이 터무니없거나 과도한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다.

19세기에 들어 산업혁명의 도래로 급증하는 기업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손해배상의 산정에 관한 배심원의 평결에 제한을 가하기 위한 법원의 원칙들이 개발되었다. 판결은 영미계약법상 손해배상책임의 이론에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은 단순한 인과관계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가 합리적으로 예견할 있었던 범위 내에서만 인정된다는 "예견가능성의 원칙(

rule of forseeability)"을 확립한 것이다.

이는 계약위반 당사자가 계약체결 당시에 계약위반의 개연성 있는 결과로서 예견할 없는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원리로, 현대 영미계약법상 손해배상 범위 판단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계약당사자가 모든 결과적 손해까지 무제한으로 배상해야 한다면, 계약 당사자는 언제든지 통제할 없는 위험에 노출될 있어, 기준은 거래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알리지 않은 사정은 보호되지 않는다

Hadley의 손해는 실제로 발생했고, 원인 역시 분명하다. 그럼에도 손해가 배상되지 않은 이유는, 손해가 상대방과 공유되지 않은 정보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Hadley공장은 해당 크랭크축 하나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실을 운송업자에게 명확히 알리지 않았다. 운송업자의 입장에서는 해당 부품이 단순한 예비 부품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Hadley 부품이 없으면 공장이 완전히 멈춘다는 점을 명확히 전달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있다.

운송업자는 신속한 운송 수단을 선택했을 수도 있고,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을 요구했을 수도 있다. , 정보의 제공 여부는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계약당사자 간의 위험을 배분하는 역할을 있다. 이러한 원리는 결과적 손해(

consequential damages) 관한 일반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이와 같은 구조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영미계약법은 손해를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직접손해(

direct damages), 특별한 사정에서 비롯되는 결과적 손해(consequential damages) 구분한다. 직접손해는 별도의 설명 없이도 배상이 인정되지만, 결과적 손해는 계약 체결 당시 상대방이 사정을 알았거나 있었던 경우에만 인정된다. 계약에서 침묵은 중립이 아니며, 말하지 않은 사정은 사정을 가진 자가 스스로 위험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계약은 위험을 어떻게 나눌지를 정하는 과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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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업 계약서에서도 원리는 다양한 형태로 반복된다. 특히, 국제거래계약에서 흔히 등장하는 간접손해 배제 책임제한(limitation of liability) 관련 규정은 바로 예견가능성의 범위를 계약으로 구체화한 결과라 있다.

당사자들은 계약을 통해 어떤 손해를 배상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지, 어떤 손해를 제외할 것인지를 미리 정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줄인다. 이는 단순한 법률 기술이 아니라, 거래 리스크를 관리하는 핵심 수단이다. 손해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해당 손해가 상대방에게 예견가능했음을 입증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계약 체결 단계에서 충분한 정보 제공이 선행되어야 한다.

반대로

책임을 부담하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한 방어 논리가 된다. 결국 계약은 문서에 적힌 문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면에서 어떤 정보가 공유되었는지, 어떤 위험이 서로 인식되었는지가 책임의 범위를 결정지을 있다.

알려지지 않은 손해는 책임의 영역 밖에 머무는 것이다. 계약을 준비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상대방이 반드시 알아야 위험을 충분히 설명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훗날 분쟁의 결론을 좌우하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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