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에 ‘레트로 상품’ 경쟁이 확산하고 있다. 과거의 맛과 브랜드 서사를 다시 꺼내 중장년층에는 향수를, 2030세대에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전략이다. 신제품이 쏟아지는 시장에서도 소비자 지갑은 여전히 검증된 ‘아는 맛’에 반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개발에만 3년 … 레트로 라면 '삼양1963' 인기
24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의 삼양1963은 출시 5개월여 만에 월 700만개 수준의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삼양식품이 작년 11월 3일 선보인 이 제품은 1963년 출시된 삼양라면의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라면이다. 가장 큰 특징은 우지다. 현재 시판 라면의 상당수가 팜유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삼양1963은 소기름인 우지로 면을 튀겼다.
출시일도 상징성을 담았다. 1989년 우지 파동이 발생한 지 정확히 36년이 되는 날에 제품을 공개했다. 삼양식품 입장에서는 과거의 부담이던 우지를 오히려 브랜드 정통성과 기술력의 상징으로 다시 꺼낸 셈이다. 발표회 장소도 창업주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의 창업 서사와 맞닿은 남대문시장 인근으로 정했다. 제품 하나에 맛과 역사, 브랜드 회복 서사를 모두 담은 것이다.
삼양1963은 개발에만 3년가량 걸렸다. 삼양식품은 전국의 유명 사골 맛집을 찾아다니며 국물 맛을 연구했고, 수십t의 우지와 수백 개의 샘플을 활용해 제품을 다듬었다. 우지로 튀긴 면은 씹을수록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이 살아나는 것이 특징이다. 국물은 소고기, 사골, 닭고기 베이스에 무와 파를 더해 깔끔한 뒷맛을 냈고 청양고추로 얼큰함을 살렸다. 분말스프 대신 액상스프를 적용해 풍미를 강화한 것도 차별점이다.
새우깡 1358억원…상위권 장악한 ‘장수 과자’
‘아는 맛’에 대한 수요는 스낵 시장에서도 뚜렷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스낵과자류 소매점 누적 매출 1위는 농심 ‘새우깡’이었다. 매출은 1358억원에 달했다. 새우깡은 1971년 출시된 대표 장수 과자다.
2위는 오리온 ‘포카칩’으로 1163억원을 기록했다. 3위는 농심켈로그 ‘프링글스’(984억원), 4위는 롯데웰푸드 ‘꼬깔콘’(879억원), 5위는 오리온 ‘오징어땅콩’(666억원)이었다. 해태제과의 ‘맛동산’(589억원)과 ‘허니버터칩’(469억원)이 각각 6위와 7위에 올랐다. 상위권 상당수가 출시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제품이다.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유행도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실제 매출 상위권은 오래된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다. 소비자가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결국 검증된 맛이라는 뜻이다. 식품업체들이 단종 제품을 되살리거나 장수 브랜드를 재해석하는 이유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띄우는 것보다 이미 소비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브랜드를 활용하는 편이 실패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레트로 상품은 중장년층과 젊은 소비자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40~50대에게는 어린 시절 먹던 맛과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20~30대에게는 오히려 낯선 복고 감성이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여진다. 같은 제품을 두고 한쪽은 향수로, 다른 한쪽은 ‘뉴트로’ 콘텐츠로 소비하는 구조다.
복고에 프리미엄까지 입힌 식품업계
최근 식품업계의 레트로 전략은 단순히 옛 포장을 되살리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제품의 서사를 가져오되 원재료, 제조 방식, 패키지, 체험 마케팅을 현대적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삼양1963이 대표적이다. 우지 라면이라는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복원하는 대신 프리미엄 라면이라는 새 포지션을 입혔다.
삼양식품은 성수동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삼양1963’ 옥외광고 캠페인을 진행했고, 팝업스토어 ‘삼양1963 프리미엄 라면 바’도 열었다. 라면을 단순한 간편식이 아니라 미식 경험으로 소비하도록 만든 것이다. 코엑스에서 열린 출시 100일 기념 행사에는 이틀간 1만여 명이 방문했다. 제품의 과거 서사를 체험형 콘텐츠로 확장한 사례다.
과자·음료업계도 장수 브랜드를 활용한 레트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빠다코코낫’ ‘롯데샌드’ 등 오랜 기간 판매된 과자를 중심으로 패키지 리뉴얼과 한정판 출시를 이어가고 있다. 해태제과 역시 ‘홈런볼’ 등 스테디셀러를 활용한 협업·한정판 제품을 선보이며 브랜드 수명을 확장하고 있다.
음료 시장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빙그레는 ‘바나나맛우유’를 앞세워 굿즈와 협업 상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며 뉴트로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도 ‘칠성사이다’ 등 장수 브랜드를 중심으로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업계에서는 레트로 상품 경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원가 부담과 마케팅 비용이 커진 상황에서 이미 인지도가 쌓인 브랜드는 기업 입장에서 효율적인 자산이다. 제품 개발 비용을 줄이면서도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여기에 복고 감성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결합하면 가격 저항도 낮출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는 완전히 낯선 제품보다 익숙하지만 조금 새롭게 바뀐 상품에 더 쉽게 반응한다”며 “특히 경기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검증된 맛과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권 기자의 장바구니는 기자가 직접 담은 현장 체감 물가와 식품·유통 트렌드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몰 등을 오가며 실제 장바구니에 담긴 가격 변화를 추적하고, 신제품 출시와 소비 흐름까지 함께 짚습니다. 단순 가격 나열이 아니라 '왜 올랐는지, 무엇이 팔리는지, 소비자는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풀어내는 데 초점을 둡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3 hours ago
6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