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에서 건너온 한·일 미술교류 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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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의 1996년작 ‘사이보그 드로잉(레드 I)’. /아라리오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불의 1996년작 ‘사이보그 드로잉(레드 I)’. /아라리오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주차금지 구역에 다양한 오브제를 둔 서울의 풍경이 신기했어요. 질서와 구분되는 일탈의 현장인데, 일본에서 그런 걸 본적 없는 제게 영감을 줬어요. 주차 금지 정물이 마치 기하학적 추상이나 조각처럼 느껴졌지요.”

일본 작가 나카무라 마사토(63)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로드무비: 1945년 이후 한·일미술>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사진 작업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도쿄예대 동기로, 홍익대 유학 경험도 있는 그는 1989~1994년 서울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이번 전시에 출품했다. 나카무라는 “일기예보 지도에도 늘 한국과 일본이 함께 그려지지 않느냐”며 “두 나라는 앞으로도 같은 기후와 같은 프레임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나카무라가 1990년대 한일 미술의 교류를 상징하기 훨씬 전부터, 한일 예술가의 다양한 접점을 이야기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요코하마미술관이 공동기획한 이번 전시는 1945년을 기점으로 80년에 걸친 한일 현대미술 교류의 역사를 작품과 아카이브를 통해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에서 먼저 열렸고 이후 규모를 확장해 과천관으로 옮겨왔다.

전시는 시대별로 다섯 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가장 먼저 재일조선인의 시선이 등장한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남아 활동을 이어간 재일조선인 미술가 가운데 리얼리즘 계열의 화가 조양규, 송영옥, 추상 실험을 전개한 곽인식 등 다양한 경향의 작가가 공존했다. 일본에서 창고 노역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조양규의 작품 <밀폐된 창고>(1957)는 재일조선인들의 척박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분위기가 반전된 두 번째 섹션은 백남준과 일본 전위예술가들의 교류를 그렸다. 백남준이 일본 전위미술 그룹 ‘하이레드 센터’와 함께 한 개인 방공호 제작 퍼포먼스 ‘쉘터 계획을 위한 인체 전개도 사진’(1964)을 비롯해 구보다 시게코와 했던 다양한 작업이 소개됐다.

세 번째 섹션부터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본격화한 미술 교류를 조명한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 현대회화전> 관련 자료와 함께 박서보, 이우환, 하종현 등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박서보와 이우환의 교류, 명동 화랑과 도쿄 화랑을 중심으로 형성된 아티스트 네트워크도 함께 소개돼 눈길을 끈다.

네 번째 섹션에선 1990년대 이후 양국 작가들의 작업이 이어진다. 앞서 설명한 나카무라 마사토의 서울 사진 연작과 함께 무라카미 다카시, 고낙범, 이불, 최정화 등 현재 관람객에게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이불의 드로잉 47점은 일본 활동을 발판 삼아 국제무대로 확장해가는 초기 작업 세계와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 섹션에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공동체와 차별의 문제를 탐구한 다나카 고키의 ‘다치기 쉬운 역사들’(2018), 일본 사회가 겪은 재난의 현실을 다룬 정연두 작가의 ‘마술사와의 산책’(2014) 등과 만날 수 있다.

전유신 학예연구사는 “로드무비라는 장르가 이동과 성장의 서사를 담고 있듯, 이번 전시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한일 예술가들의 만남과 교류를 따라가는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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