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에린의 에린힐스 골프코스(파72) 15번홀(파4·260야드). 황유민의 티샷이 그린 왼쪽에 떨어졌다. 핀까지 남은 거리는 약 17m. 이글까지 노릴 기회였으나 그의 퍼트를 떠난 공은 홀을 지나친 뒤 그린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네 번째 샷 만에 다시 그린에 공을 올린 그는 두 번의 퍼트로 더블보기를 적어냈다.
◇까다로운 코스에 오버파 속출
이처럼 제80회 US여자오픈(총상금 1200만달러) 3라운드는 한국 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에게 ‘악몽’이었다. 평균 13.6피트(약 4.1m)로 끌어올린 그린 스피드와 까다로운 핀 위치로 세팅된 코스에서 이날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9명뿐이었다. 그중 한국 선수는 전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이 유일했다.
갑자기 어려워진 코스 세팅을 극복하지 못한 한국 군단은 2일 끝난 대회에서 5년 만의 우승 트로피 탈환에 실패했다. 그나마 마지막 날 최종 4라운드에서 4타를 줄인 최혜진이 공동 4위(최종 합계 4언더파 284타)에 올라 한국 선수 유일한 톱10으로 자존심을 지켰다.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은 한때 한국 선수들의 ‘우승 텃밭’으로 불렸다. 1998년 박세리가 처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지금까지 10명의 한국 선수가 11승을 합작했다.
그러나 2020년 김아림 우승 이후 대회 우승 명맥이 뚝 끊겼다. 이번 대회에도 25명의 한국 선수가 출전해 5년 만에 우승에 도전했으나 끝내 빼앗긴 텃밭을 되찾지 못했다. 우승은 최종 합계 7언더파 281타를 친 스웨덴 출신 마야 스타르크의 몫이었다. 그는 공동 2위 넬리 코르다(미국)와 다케다 리오(일본)를 2타 차로 따돌렸다.
악몽의 3라운드가 문제였다. 2라운드까지 김아림이 공동 2위, 임진희가 공동 8위에 올라 기대를 모았지만 3라운드에서 김아림이 5타, 임진희가 7타를 잃어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US여자오픈에 처음 출전한 황유민은 공동 12위로 반환점을 돌았으나 3라운드 때 무려 9타를 잃고 미끄러졌다. 본선부터 난도를 높인 코스 세팅이 원인이었다. 미국골프협회(USGA)에 따르면 대회 조직위원회는 3라운드에 앞서 그린 스피드를 13.6피트로 높였다. 한 골프업계 관계자는 “국내 일반 대회의 그린 스피드는 2m대 후반에서 3m대 초반 정도로 세팅된다”며 “그린을 짧게 깎고 롤링 작업을 더 해 체감상 느껴지는 스피드는 두 배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에 따르면 최종 4라운드의 그린 스피드도 전날과 비슷했다. 대회 초반까지만 해도 올 시즌 2승째를 기대하던 김아림은 마지막 날 3타를 더 잃고 공동 26위(3오버파)에 그쳤다. 빠른 그린에 적응하지 못한 임진희도 6타를 더 잃어 공동 51위(9오버파)로 추락했다.
◇끝까지 살아남은 유현조·황유민
이번 대회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소속 선수 6명이 도전장을 냈다. 그중 커트를 통과해 악명 높은 3라운드를 경험한 선수는 유현조와 황유민 단 두 명이다. 본선에서만 7타를 잃은 뒤 공동 36위(7오버파)를 차지한 유현조는 “3라운드부터 그린이 딱딱해져 그린 스피드가 갑자기 빨라졌다”며 “핀 위치도 까다로워 공략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환경과 생소한 코스에서 경기하며 부족한 부분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날 6타를 더 잃은 황유민은 공동 56위(12오버파)로 대회를 마쳤다. 내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진출을 준비하는 그는 “3라운드부터 그린 주변 플레이가 어려워졌다”며 “쇼트게임의 중요성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3개 대회 연속 커트 탈락 등 부진하던 윤이나는 이번 대회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그는 최종일 경기에서 이글 두 방을 터뜨리는 등 4타를 줄여 공동 14위(이븐파)에 올랐다. LPGA투어에 데뷔한 이후 최고 성적이다. 고진영도 공동 14위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