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원스’
음악이 건네는 위로와 치유
공연장으로 들어서면 아일랜드 더블린의 펍에 온 것 같다. 무대에 마련된 바에서 음료를 마실 수 있고,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배우들의 흥겨운 연주로 공기가 달아오른다.
꽃을 파는 체코 출신 이민자 걸(Girl)은 거리에서 기타를 치는 가이(Guy)의 음악에 이끌린다. 하지만 가이는 음악에 대한 꿈을 접었다. 아버지와 함께 진공청소기를 고치며 사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 걸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고 가이에게 다가가며 그의 가슴 속에 눌러 왔던 열망을 조금씩 끄집어낸다. 피아노를 치는 걸, 체코에서 온 이민자 친구들과 펍 사장 등도 하나 둘씩 합류하며 가이가 만든 곡으로 앨범을 제작하는 작업을 진행한다.2007년 아일랜드에서 제작된 동명의 인디 영화를 원작으로 만들었다. 2012년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그 해 토니상 베스트 뮤지컬상을 비롯해 8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2014년 초연됐고, 2015년 내한공연이 열렸다.
음악으로 대표되는 가슴 속 열망이 꽃처럼 터져 나오는 과정이 섬세하면서도 따뜻하게 펼쳐진다. 배우들은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 첼로 만돌린 아코디언 드럼 등을 직접 연주하며 발을 구르고 춤춘다. 다재다능한 배우들이 이토록 많다니, 놀랍기만 하다. 여자 친구가 뉴욕으로 떠나버린 가이, 홀로 딸을 키우는 걸. ‘Falling Slowly‘, ’Leave‘ 등 감미로운 선율은 상처 입은 이들이 마음을 열고 서로를 보듬어 가는 과정에 자연스레 스며들며 반짝인다.가이는 윤형렬 이충주 한승윤, 걸은 박지연 이예은이 연기한다. 가이의 아버지 다 역은 박지일 이정열, 빌리 역은 김진수, 바루스카 역은 강수정이 각각 맡았다. 윤형렬은 현실의 벽 앞에서 망설이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가이를 설득력 있게 연기한다. 초연 후 10년 만에 다시 걸 역을 맡은 박지연은 당차고 속 깊으면서도 때론 엉뚱한 모습을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김진수는 특유의 시원한 웃음으로 유쾌한 빌리를 친근하게 소화했다.
쉬는 시간에도 무대 위 펍을 즐길 수 있는 것 역시 색다른 재미다.
5월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밀실 속 풍자, 숨막히는 반전
마피아 알 카포네가 미국 시카고를 장악한 시기 벌어진 죽음, 배신, 복수를 ‘로키’, ‘루시퍼’, ‘빈디치’라는 세 편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다. 영국 연극계 유명 콤비인 제이미 윌크스가 극본을 쓰고 제스로 컴튼이 연출했다. 2014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최고 히트작으로 선정됐다. 국내에서는 2015년 초연됐다.
배경은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 1923년부터 1943년까지 약 10년을 주기로 벌어진 세 개의 사건이 발생한다.
로키(1923년)에선 알 카포네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유명 클럽 쇼걸 룰라 킨이 이중 생활을 이어간다. 그녀의 결혼식 전날, 661호에선 그녀를 둘러싼 10명의 인물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건이 벌어진다.
루시퍼(1934년)에서는 알 카포네가 알카트라즈 감옥에 수감된 후 조직 내 2인자 닉 니티와 그의 아내 말린이 661호에 머문다. 어두운 그림자가 꿈틀대며 죽음의 불씨가 번져간다.
빈디치(1943년)는 알 카포네가 은퇴한 후, 경찰 빈디치의 복수극을 그렸다. 그가 죽이려는 인물의 딸인 루시가 빈디치를 돕는 가운데 잔인한 진실의 문이 열린다.
무대는 단 100개인 객석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배치됐다. 맨 앞줄에서 손을 뻗으면 배우에게 닿을 듯 가깝다. 관객 역시 661호에 들어가 그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눈 앞에서 보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전개와 거듭되는 반전에 눈을 뗄 수 없다.
올드맨은 이석준 정성일 김주헌, 영맨은 김도빈 최호승 최정우가 연기한다. 레이디 역은 임강희 정우연 김주연이 맡았다. 작품별로 올드맨, 영맨, 레이디까지 세 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김주헌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올드맨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김도빈은 순수함과 절망, 광기를 오가는 캐릭터를 매끄럽게 소화한다. 정우연은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수수께끼 같은 여인 그 자체다.
쉬는 시간 없이 75분간 진행되는 세 작품은 하루에 한 차례씩 공연된다. 작품별 연결고리가 있지만 각각 독립성을 지녀 한 작품만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하나를 보고 나면 나머지 작품들이 몹시 궁금해진다.
6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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