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5위 경제강국으로 떠오른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맞서 국민들에게 국산품 구매를 촉구했다. 또 트럼프 정부의 위협에도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계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 뉴욕타임즈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인도 정부 소식통들은 모디 정부가 인도 정유업체들에게 러시아산 석유 구매 중단을 지시하지 않았으며, 구매 중단 여부에 대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영 정유업체와 민간 정유업체 모두 여전히 러시아로부터 석유를 구매하고 있다.
주말에 모디 총리는 북부의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열린 대중집회에서 불확실한 세계 정세 속에서 “인도인의 땀으로 만들어진 것만 살 것”이라고 연설했다. 또 "농민, 중소 산업, 청년층의 고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트럼프 정부가 인도의 대미 수출품에 25% 관세와 러시아산 석유 구매에 대한 추가 벌칙을 부과하겠다는 발표에 이어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압박하기 위해 인도를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주 인도가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두 나라 경제가 함께 죽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위협했다.
이는 미국의 오랜 아시아 전략에서의 큰 변화로 읽히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오랫동안 인도를 지원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전 종식이라는 성과를 내는 노력에 버티고 있는 푸틴을 압박하기 위해 오랜 전략도 뒤집는데 나섰다.
인도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 무역 협상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있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조만간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경제규모가 확실시되는 인도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많은 양보를 할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다.
내티시스의 수석 경제학자인 트린 응우옌은 최근 체결된 인도-영국 무역 협정에서도 모디 총리는 미국이 요구했던 농업과 유제품 같은 부문의 개방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비서실장인 스티븐 밀러는 3일 “인도가 미국 상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이민 시스템을 속이고 있으며, 중국과 비슷한 양의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 총리와 훌륭한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이전쟁(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도 정유사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의 석유 구매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유럽 연합(EU)과 미국으로부터 지탄을 받아 왔다. 인도는 러시아가 해상으로 수출하는 원유의 세계 최대 수입국이다.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4일(현지시가)인도 증시는 상승했고, 인도의 루피화와 채권 가격도 상승했다. 이는 OPEC+가 9월 생산량 대폭 증산 계획을 발표한 후 유가가 급락한데 따른 것이다. 인도는 석유 순수입국이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 피치의 현지 자회사인 인디아 레이팅스의 수석 경제학자 데벤드라 팬트는 "트럼프 정부처럼 인도 정부도 미국의 정책에 대응하는데 대한 자체 비용 편익 분석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 외교부의 란디를 자이스왈 대변인은 “여러 나라와의 양자 관계는 제3국의 관점에서 봐선 안된다”며 “냉전 시대부터 인도와 러시아는 꾸준하고 오랜 세월 검증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인도의 최대 무기 공급국 중 하나이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