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도 인간도, 왜 속일까 …"그래야 살아남았으니까"

2 weeks ago 13
문화 >

자연도 인간도, 왜 속일까 …"그래야 살아남았으니까"

입력 : 2026.04.24 16:57

속임수의 진화 리싱 선 지음, 김아림 옮김 세종 펴냄, 2만2000원

속임수의 진화 리싱 선 지음, 김아림 옮김 세종 펴냄, 2만2000원

다른 새의 둥지에 슬그머니 알을 밀어 넣는 뻐꾸기, 암컷 곤충의 모습과 향기를 완벽히 흉내 내 수컷의 가짜 짝짓기를 유도하는 난초, 포식자가 나타나면 몸을 부풀려 독사의 머리 모양을 흉내 내 위기를 모면하는 애벌레까지. 자연에서 일어나는 속임수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흔히 자연은 정직하고 인간이 거짓을 일삼는다고 믿지만, 생물학자 리싱 선의 시선에서 생태계는 살기 위해 속이고 속여야만 하는 전쟁터다.

'자연에서 인간까지 속임수의 진화'의 저자 리싱 선 미국 센트럴워싱턴대 생물과학부 석좌 연구교수는 생명체가 속임수를 쓰는 이유는 비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살아남는 일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기만은 생존을 위한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속임수는 동식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로 위장해 자원을 독점하며, 일부 박테리아는 협력 사회에서 무임승차해 혜택만 누리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속임수는 생명 시스템 전반의 작동 원리로 내재해 있다. 속임수는 질서를 파괴하는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며 획득한 고도의 지능적 산물인 셈이다.

속임수는 인간 사회에서도 벌어진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실제 모델인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사기 행각이나 가상화폐 사기, 스포츠 도핑 등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속임수와 맥락을 같이한다.

저자는 속임수를 단순히 비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속임수가 어떻게 생물학적 다양성과 인류의 문명을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분석한다. 속임수가 등장하면 이를 간파하려는 감시와 판별 시스템이 발달한다. 이 경우 감시와 판별을 우회하려는 더 정교한 속임수가 등장한다. 이 같은 진화적 경쟁은 역설적으로 생명체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고, 신뢰를 검증하는 복잡한 체계를 구축하게 했다.

특히 인간은 속임수에 맞서 싸우는 제도와 장치를 만들었다. 사회적 규범, 내부고발자, 언론, 과학계의 동료 심사 제도는 우리 안의 사기꾼 본성을 억제하며 협력이 유지되도록 돕는 장치다.

속임수가 만연한 세상에서 신뢰는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핸디캡의 원리'를 통해 해답을 제시한다. 공작의 화려한 꽁지깃이나 인간 사회의 값비싼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비효율적이고 낭비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나는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강력한 신호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속일 수 없는 비용을 지불해 자신의 가치와 정직함을 입증하는 셈이다. 저자는 정직이 속임수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된 가장 비싼 전략이라고 단언한다.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연이 수억 년 동안 축적해온 기만과 방어의 역사는 생존의 지혜를 빌려준다. "자연의 속임수를 이해하면 인간 사회의 패턴도 파악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넓혀준다.

[정유정 기자]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