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원유 재고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경고가 불과 2주전에도 나왔는데, 이제 원유 공급 과잉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의 평화 협정 이후 호르무즈 해협에 묶여 있던 원유들이 일시에 풀리며 공급량이 급증한데다 최대 수입국이었던 중국이 수입량을 늘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월가의 에너지 관련 분석가들은 이번 주에 내놓은 분석에서 내년부터 석유 시장이 공급 과잉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불과 2, 3주 전만 해도 휴전에도 전세계 원유 재고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석유 업계 고위 임원들과 각종 기관들이 경고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반전이다.
JP모건 체이스의 상품 연구 책임자인 나타샤 카네바는 보고서에서 "시장은 갇혀 있던 원유가 마침내 다시 공급되자 일시적 공급 과잉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수개월간 원유 없이 작동하는 방법을 익혀온 시장에 다시 원유가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가는 원유는 중국 외에는 갈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중국은 원유를 사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도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간 분쟁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며 중동 지역의 많은 원유 생산 시설이 여전히 가동을 중단한 상태이다. 실제로 전쟁 기간 동안 전 세계 원유 재고는 급격히 감소했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이 날 ICE 시장에서 9월 인도분이 72달러에 거래되며 전쟁 이전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전쟁 기간 동안 얻었던 상승분은 모두 반납하고 4월 말 고점 대비 43% 폭락했다. 현물 원유 시장은 코로나 19로 인한 수요 붕괴 이후 가장 약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극적인 전환은 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로 인한 유가 급등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소 해소됐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컨설팅 회사인 에너지 애스펙츠의 석유 부문 책임자인 킷 헤인즈는 "내년 석유 시장이 약세일 것(가격하락)이라는 비관적 분위기가 압도적”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이란이 6월 중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전부터 페르시아만 내 공급업체들은 선적량을 늘려왔다. 그 이후 몇 주만에 전쟁동안 해협에 갇혀 있던 6천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일시에 대량으로 시장에 유입됐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이란 전쟁 이전 수준에 준하는 수출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 통과는 물론 해협을 우회하는 파이프라인 덕분이다. 여기에 수년간 미국의 강력한 제재 대상이었던 이란산 석유도 미국이 제재 면제를 발표하면서 시장에 나와 다시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가로 전쟁기간중 원유 구매량을 대폭 줄였던 중국이 구매를 늘리지 않고 있다. 또한, 미국 걸프 해안의 비상 지하 저장 시설에서는 매주 수백만 배럴의 원유가 계속해서 방출되고 있다. 이는 석유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고안된 기록적인 4억 배럴 규모의 원유 방출 계획의 일부이다.
아랍에미리트(UAE)산 원유가 이젠 미국까지 수출되고 있으며, 심지어 하와이의 구매자들에게도 판매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실은 한 선박은 1만 마일이 넘는 거리를 항해해 인도 해안에 도착했지만, 2주 넘게 구매자를 찾지 못해 항구에 방치돼있다.
이 같은 현상의 주요 원인은 전쟁 이전 수준 대비 하루 약 500만 배럴의 수입량을 줄인 중국이 아직 구매량을 거의 늘리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원유 구매력이 약화됐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중국 정유사들이 주로 구매하는 원유 등급의 가격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중동 원유의 주요 등급인 오만산 원유의 현물 가격은 두바이 유가 대비 4달러 할인된 가격까지 하락했는데 이는 팬데믹 당시인 2020년 이후 최대 할인율이다.
콩고 공화국의 제노산 원유는 브렌트유 대비 14달러 할인된 사상 최대 할인율을 제시했음에도 판매되지 않았다. 지난주 중국 정유사들이 할인된 중동산 원유를 기회주의적으로 구매하는 움직임이 일부 나타났지만, 분석가들은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큼 구매량이 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씨티그룹은 보고서에서 “중국 구매자들의 수요가 의미 있게 회복되지 않는 한, 시장에 추가로 공급되는 원유량은 이미 발생하고 있는 공급 과잉을 더 심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원유 현물 시장 약세가 오래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호르무즈 해협에 묶여 있던 원유의 초기 유입은 일회성 공급량 증가라고 보고 있다. 걸프 지역의 생산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전쟁 이전 수준에 아직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조사에 따르면 6월 석유수출국기구(OPEC) 생산량은 2월 수준보다 28% 감소했다.
원유 시장과 달리 원유를 가공한 석유 제품 시장은 아직 강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의 벤치마크 디젤 선물 가격은 원유보다 배럴당 거의 50달러나 높다. 이는 지난달 러시아산 디젤 선적량의 급감과 수출 금지 가능성 때문이다.
휘발유 시장 역시 압박을 받고 있다. 최근 최근 몇 달간 정유사들이 항공유 생산에 집중하면서 미국의 재고량이 계절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략 석유 비축량 방출은 다음 달에 거의 중단될 전망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각국 정부가 비축량을 신속하게 재건하려 나설 경우 수요 증가로 이어져 과잉 공급된 원유를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블룸버그는 향후 전망은 세 가지에 달려 있을 것으로 봤다. 불안정한 평화 협정이 유지될 수 있을지와 OPEC+가 가격 보호를 위해 생산량 반등을 억제할 것인지, 그리고 중국의 수입이 회복될 것인지이다.
리스타드 에너지의 지정학 분석 책임자 호르헤 레온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의 정상화가 증산을 약속한 OPEC에 어려운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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