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법학회, 금융기본권 법적 쟁점 논의
김자봉 회장 “시스템 위험은 고신용자가 커”
개헌 없는 금융기본권 도입 제안도
신용도가 낮은 차주가 금융시스템 전체에 주는 충격은 오히려 작은데도 실제 위험 대비 더 비싼 금리를 떠안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학계는 이런 금리의 역진성을 바로잡는 것이 차별 없이 기본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권리, 곧 금융기본권을 실현하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은행법학회는 17일 은행회관에서 ‘공법과 금융 콜로퀴움(학술토론회):금융기본권의 헌법·행정법·법철학적 기초와 규제법적 쟁점 및 실행방안’을 주제로 정책 학술대회를 열었다. 금융기본권은 부당한 차별 없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예금·대출·보험·결제 등 기본적인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뜻한다. 최근 정부는 포용금융 기조 속에 금융기본권 제도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발표자로 나선 김자봉 은행법학회장 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기본권을 실현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금리 역진성 해소’를 제시했다. 금리 역진성이란 신용도가 낮은 약자일수록 자신이 시스템에 끼치는 위험보다 더 비싼 금리를 부담하는 거꾸로 된 구조를 말한다.
김 회장이 제시한 한국·미국·EU·영국 4개국의 2010~2024년 패널 데이터(60분기·960개 관측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신용도가 낮은 대출자가 개별적으로 돈을 못 갚을 위험(기대손실)은 고신용자의 17~29배에 달하지만, 금융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충격(시스템 위험)은 오히려 신용도가 높고 규모가 큰 ‘큰손’이 1.26~2.39배 더 크게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저신용자는 시스템 위험에 대해 실제 책임보다 더 비싼 금리를 추가로 부담하고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김 회장은 이를 구조적 역설로 규정했다. 은행이 쌓아야 하는 자본비용은 고신용 대출자(0.35%포인트)에서 초저신용 대출자(1.50%포인트)로 갈수록 늘어나지만, 정작 이들이 시스템에 미치는 위험 기여도는 5.28%에서 2.62%로 거꾸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위험을 더 키우는 쪽이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애덤 스미스와 롤스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해법으로는 대출자 그룹별로 개인의 부도 위험뿐 아니라 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따져 자본 부담을 다시 나누는 방안이 제시됐다. 국제 은행 자본규제 기준인 바젤 내부등급법(IRB)의 위험가중치 산정에 시스템 위험을 반영하고, 대형 금융기관에 매기는 추가 자본 부담을 위험 기여도에 비례해 배분하면 고신용자 부담은 늘고 저신용자 부담은 줄어 역진성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설명이다. 단기적으로는 신용보증 보증료 할인을 통한 저신용자 금리 부담 완화도 함께 제안됐다.
금융기본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리적 검토도 이어졌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낸 승이도 건국대 교수는 금융기본권을 “부당한 차별 없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신용·저축·보험·결제 등 기본 금융서비스에 접근할 권리”로 정의하며 개헌 없이도 헌법재판소가 현행 헌법 제10조·제17조·제23조 1항·제34조 1항·제119조 2항의 해석을 통해 금융기본권을 충분히 도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은행은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아 형성된 과점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해 왔고 위기 때 공적자금 지원을 받아 온 만큼, 은행이 제공하는 금융서비스는 공공재 성격을 지니며 국가가 접근성 제고를 위해 일정 부분 개입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논리다. 다만 그는 “금융기본권의 과도한 확장이 은행의 계약·영업의 자유 및 재정 건전성과 충돌할 수 있는 만큼, 보호영역을 한정해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단서를 덧붙였다.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실행 과제도 폭넓게 논의됐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계좌가 없거나 수수료 부담으로 계좌 유지가 어려운 취약계층이 세금 혜택에서도 소외된다”며 “근로장려금·자녀장려금이 빚 때문에 압류되지 않도록 보호를 강화하고 채무조정 과정의 면제이익에 대한 과세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재훈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금융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공동 점포 허용과 소비자가 감독기관에 직접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법제화를, 김유성 연세대 교수는 도산 절차를 거친 채무자에 대한 신용정보 낙인과 계좌 개설 거부를 해소하기 위한 도산법 제도 개선을 각각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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