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은 저축을 줄여서라도 소비하고 한국인은 돈을 쌓으면서도 지갑을 닫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AI) 랠리에 따른 자산 효과가 소비를 떠받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부동산에 묶인 자산 구조와 노후 불안으로 소비를 줄이고 있어서다. 똑같이 고령화하고 있어도 자산 구성과 소비문화의 차이가 경제 체력을 갈라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미국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올해 4월 미국의 가계 저축률은 사상 최저 수준인 2.6%로 떨어졌다. 2020년 31.8%에 이르던 것이 12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개인 저축률은 세금을 내고 소비한 뒤 남은 소득 비율을 뜻한다.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다. 은퇴 후 소득이 줄어든 고령층이 과거에 모아둔 자산을 생활비로 사용하면서 저축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사회보장청(SSA)에 따르면 사회보장연금을 받는 은퇴자는 1970년 1335만 명에서 올해 5월 5450만 명으로 4배 넘게 늘었다.
소비 확대도 저축률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에서는 빚을 내 소비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미국 중앙은행(Fed)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미국 가계 부채는 19조900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AI 열풍으로 급등한 주가가 소비자의 씀씀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앨버트 에드워즈 소시에테제네랄 전략가는 이를 ‘부(富)의 효과’로 설명했다. 장부상 자산가치가 불어나자 실제보다 더 부유해졌다고 느껴 소비를 늘리는 현상이다. 그는 “AI 강세장이 꺾이면 자산가치는 낮아지고 빚만 남아 소비와 경제 성장 모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물가 상승도 저축 여력을 줄이고 있다. 생활비 부담이 커지며 소득 중 저축으로 돌릴 몫이 감소하고 있다.
한국도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지만 양상은 다르다. 1980~1990년대 20%대를 웃돌던 한국의 가계 저축률은 작년 8.6%를 기록했다. 저축률은 낮아졌지만 미국, 일본과 비교하면 하락 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모습이다.
이는 자산 가격 상승이 소비로 이어지는 소비전환율이 낮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에서 주식 자산의 소비전환율은 1만원의 평가이익이 발생했을 때 약 130원을 소비하는 수준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 지표가 3~4%인 것과 비교해 3분의 1 정도다. 가계의 주식 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고 가격 변동성이 큰 영향이다.
가계 자산 구성에 차이도 크다. 한국은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4년 기준 64.5%로 30%대인 미국과 일본보다 높다. 부동산은 금융자산에 비해 현금화가 쉽지 않다. 이는 미국과 일본 대비 쓸 돈이 적은 한국 고령층이 소비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른바 ‘불황형 저축’이다.
이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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