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20년 잔혹사
SKT 해킹 같은 개인정보 유출사고 4년반 동안 1104건
"신상정보 1인당 80원" 양분 삼아 … 피싱, 무차별 확산
강미경 씨(57·가명)는 스물한 살 아들이 군에 입대한 지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5월 아들이 복무 중인 부대의 대대장이라는 남성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 남성은 다급한 목소리로 "아드님이 큰 사고를 쳤다. 얼마 전 신병 격려 외박 때 민간인과 큰 다툼이 있었고 피해자가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30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통화를 마친 지 10분 만에 돈을 부쳤다. 대대장이라는 남성의 정체는 보이스피싱 사기범이었다.
강씨가 망설임 없이 돈을 보낸 이유는 아들에 관한 상세한 개인정보가 결정적이었다. 전화를 건 '그놈'은 아들의 전화번호는 물론 입대 날짜와 부대 위치 등을 소상히 꿰고 있었다. 보이스피싱 전문가들은 "군복을 입은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는 카카오톡 프로필 등을 통해 다양한 개인정보를 획득한 후 치밀한 각본을 만들어 범죄에 활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년 유출되는 수천만 건의 개인정보가 보이스피싱 범죄의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 유출된 개인정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생활 엿보기로 이어지면서 보이스피싱범들의 사기는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
16일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신고된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1104건으로 집계됐다.
이를 통해 노출된 개별 개인정보는 1억2200만여 건에 달했다. 특히 SKT·인터파크 등에서 정보 유출 사고가 잇달아 발생한 지난 1~4월에만 3600만건이 새어나가며 피해 규모가 급증했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암시장 등을 통해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으로 헐값에 넘어가고 있다. '개인정보 판매' 문구를 건 한 텔레그램방에서는 유출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DB)가 1만건당 80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기획취재팀=이수민 기자 / 김송현 기자 / 지혜진 기자 / 양세호 기자 / 문광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