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내리는 도덕적 판단은
본능적인 위험 인식에서 출발
문제는 위험이 다 다르다는 것
각자의 경험·신념이 영향 미쳐
같은 현실을 보고도 다른 결론
대화는 엇갈리고 분열 깊어져
분노의 원인과 작동 원리 연구
공존하는 사회로 가는 길 제시
인류 역사가 일러주는 하나의 명징한 사실이 있다면, 모든 독재자는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여긴다는 점이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로 전쟁을 일으키고, 고개 한 번 끄덕여 숱한 민간인을 학살했으면서도 모든 독재자는 심판대에 서는 순간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한다. 끝내 권좌에서 내려온 독재자는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 앞에서 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그런데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는 이가 과연 권력자일 뿐일까. 혼자서 불같이 화를 내는 '꼰대' 상사든, 경적을 울리며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라며 길길이 뛰는 운전자든, 분노하는 모든 이들은 자신을 피해자로 여긴다. 일상에서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 격노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되는 세상이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신간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는 분노의 원인을 이렇게 서술한다. "내가 옳고 저들이 틀려서가 아니라 모든 위치에서 인간은 위험과 피해를 다르게 인식한다." 대립하는 상대방에게 기본적인 도덕적 잣대가 없는 게 아니라 인간은 선천적으로 위험성을 달리 판단하도록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저자는 '세 가지 통념'을 먼저 부순다.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첫 번째 통념은 '인간은 본래부터 공격적인 포식자였다'는 믿음이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인간은 최정점에 선 포식동물로 여겨졌고, 그 결과 인간은 스스로를 모든 피조물보다 우월한 위치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은 이를 전복한다. 인류는 '무자비한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을 당하는 먹잇감'이었고, 이 때문에 주변에 위험물이 없는지를 끊임없이 경계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책에 따르면 인간은 위험한 것을 찾아내려는 강한 동기를 품는다. 저 동기의 이유는 '생존 본능'이며, 살아남겠다는 욕망은 현존 인류의 유전자에도 유산처럼 새겨져 있다.
사냥감이었던 인간은 사소한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해로운 것을 살피고 위험을 발견해야 안전하다. 또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사소한 일에도 큰 위험을 감지하고 분노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두 번째 통념은 '무해한 잘못'에 대한 인식이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에겐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고 눈에 띄는 손해도 없어 보이지만 분명히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행위가 있다. 예를 들어 인도 브라만의 장례 관습 가운데 '부친을 여읜 장남은 장례 직후 닭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장남이 닭고기를 섭취하는 일은 부친의 죽음과는 무관하지만 브라만 사회에서 장남이 닭고기를 먹는 일은 아버지의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로 여겨진다고 한다.
실질적으론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았는데도 공동체에선 '무해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무해한 행동까지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틀로 나눠 해석한다. 그래서 타인의 '무해한 잘못'을 들으면 분노감이 표출된다. 객관적으론 해가 없어 보여도 행위 안에선 해를 직감적으로 읽어내는 습성이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세 번째 통념은 '데이터와 팩트가 갈등을 해결해준다'는 기대감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위험한 존재로 여길 때 팩트와 데이터 등의 객관적 수치가 받아들여지는 일은 거의 없다. 팩트는 분열을 봉합하지 못한다. 데이터가 도덕적 분열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도 착각이다.
통념을 뒤엎은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지점은 정치적 갈등이다. 선거철만 되면 상대 진영은 세상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촌뜨기 후보에 불과하고, 또 상대 진영은 우리 진영을 보면서 현실감이 떨어져 실생활과 맞지 않는 정책을 편다고 헐뜯는 일이 반복된다.
의견의 극렬한 대립이 이어지는 이유는 상대방이 '부도덕한 인간'이란 결론 때문이다. 상대 진영은 언제나 우리 진영에 해를 입히는 파괴자가 된다. 우리는 '영웅적인 희생자'인데 저들은 '악의적인 광기의 나팔수'로 돌변한다.
하지만 저자는 쓴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초적 판단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을 상대가 설계한 '파괴의 서사'의 피해자로 위치시키기 때문에 분노와 대립이 반복된다."
온라인상에서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사소한 잘못에도 분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난 적도 없고 앞으로 만날 일도 없는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도 내게는 정신적 위해로 작동할 여지가 있다. 이를 비난하는 이유는 그들의 나의 삶을 파괴할 여지가 있어서다.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는 도덕적 확신은 스스로를 '정의로운 수호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저자는 그러나 또 말한다. 현실에서 고의로 파괴를 일으키려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더 중요한 점은 '저쪽' 사람들도 필요하다고 말이다. 내 손에 '황동 너클'을 끼우고 보이지 않는 상대를 두드려 패고, 이 전투에서 승리하겠다고 다짐하는 공동체는 건강하지 않다. 세상은 인간이 아닌, 비(非)인간들의 군집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저자는 말한다. 원제 'Outraged'.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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