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읽는 ‘텍스트 힙’ 열풍… 반짝 유행 되지 않으려면[2030세상/박찬용]

2 days ago 5

박찬용 칼럼니스트

박찬용 칼럼니스트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라는 도덕경 구절처럼 ‘힙이라 말할 수 있으면 힙이 아니’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을 의미하는 ‘힙’의 정의가 그만큼 어렵지만, ‘힙’하다고 여겨지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대세 혹은 평균과 반대라는 점. 반대면 된다. 중요한 건 평균과의 거리이지 방향이 아니다. 이 시점을 적용하면 ‘최신 유행 힙스터’는 ‘선행 힙’으로, ‘레트로 추구형 힙스터’는 ‘후행 힙’이라 볼 수 있다. 요즘 회자되는 ‘텍스트 힙’을 후행 힙이라 봐도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후행 힙은 불편을 즐기며 예전 요소들의 멋과 의미를 찾아낸다. 최신 힙스터에게는 디지털카메라가 한 세대만에 구형이 됐지만 레트로 애호가들에게는 2000년의 초창기 모델도 감성 물품이다. 유행을 넘어 시장 수준으로 커진 LP도 비슷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조선시대 골동품이나 자개장도 ‘힙 아이템’으로 소비한다. 이 역시 광의의 후행 힙이라 본다. 종이책이나 문자미디어를 읽는 텍스트 힙도 후행 힙에 해당하지 않을까. 책은 옛날부터 있었으니까.

최근 몇 달 동안 필자는 ‘텍스트 힙’의 시대가 온 것 같다는 관련 인사들의 묘한 들뜸을 느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인기 비결은 굿즈 판매와 연예인의 등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책이 많이 팔렸다는 사실이다. 젊은이들의 호응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집들. 세상이 변하나 싶었다. 철새가 돌아온 것처럼 대중교통 속에서 책 읽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서 말이다.

이런 텍스트 힙에 기뻐하기 전, 생각해 볼 요소가 있다. 후행 힙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시장 전체가 한 번은 전반적 궤멸 수준으로 무너져야 한다. 말하자면 유행과 인기의 최저점을 찍은 뒤 ‘힙’으로 재발견되는 게 후행 힙이다. 텍스트 힙이란 말이 나왔다는 건 특정 젊은이들에게 책이 완전히 잊혔다는 사실을 뜻한다. 나 역시 지난 몇 년간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생존의 위기를 느꼈다. 그 안에서 종이책을 읽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는 풍경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진 걸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른바 힙이 되면 그 뒤 추이도 비슷하다. 힙이라 불리던 일군의 경향은 아주 높은 확률로 유행에 머무른다. 한철 흥행을 넘어 사람들의 생활로 스며드는 건 극소수다. 최근 5년 동안 힙했던 걸 떠올려 보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종이책을 즐기는 텍스트 힙 역시 시장 궤멸 이후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까 두렵다. 당장 힙에 기대 몇 푼 벌고 마는 게 좋은 것일까? 그런 면에서 텍스트 힙에 대한 낙관론은 중요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 도서계가 주력해야 하는 건 굿즈, 지식재산권(IP) 사업, 정부 지원 등이 아닌 양질의 독자 개발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훌륭하고 재미있는 책을 만들고, 그 책의 훌륭함과 재미를 알리려 지속적으로 다가가고 노력하면 된다. 이러한 거시적 노력 없이는 기술 발전, 제도 개선, 유행이 모두 무의미하다. 누군가 반론할 수도 있겠다. 지금 당장 살아남기도 힘든데 그런 이상적인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한국의 출판뿐 아니라 문화시장 전반이 바로 그 근시안적 면모 때문에 점점 얄팍해진다.

2030세상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고양이 눈

    고양이 눈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디지털 동서남북

    디지털 동서남북

박찬용 칼럼니스트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