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점을 보세요[내가 만난 명문장/정은숙]

2 days ago 7

“어떤 사람의 나쁜 점을 보면 좋은 점이 안 보여요. 하지만 좋은 점을 보면 나쁜 점도 같이 보여요.”

―이성복 ‘무한화서’ 중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호두알은 까먹으면 끝이다. 이런 호두알 까먹기처럼 살 수는 없어서,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를 갈망하게 됐다. 책을 통해 제자가 됐다고 자처하며 이성복 시인에게 만남을 청했다. 책 밖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듣고 싶은 절실함이 시인에게 가닿았나 보다. 구파발에 있는 작은 우동집에서 우리는 면을 나눠 먹었다. 그리고 공원을 산책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에서 들었던 목소리, 시와 삶에 대한 명언을 잃을세라 나는 두려웠다. 돌아오자마자 기록하려는데, 아뿔싸, 벌써 아득하다. 그립다. 이럴 때 책을 펼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어떤 사람의 나쁜 점을 보면 좋은 점이 안 보여요. 하지만 좋은 점을 보면 나쁜 점도 같이 보여요. 작은 것을 보면 그 뒤의 큰 것이 안 보여요. 하지만 큰 것을 보면 그 안의 작은 것도 같이 보여요. 모든 게 선택의 문제예요. 우리가 사는 삶은 우리 자신의 선택의 결과예요.”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론집 ‘무한화서’의 문장은 ‘좋은 게 좋은 거다’는 세속의 상투어와 거리가 있다. 더 크고 정밀하게, 더 온화하고 날카롭게 세상을 대하는 수련의 차원에서 솟은 말이다.

글을 책으로 만드는 출판인으로서,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원고의 장점을 먼저 보고, 그 장점을 가릴 단점을 덜어내는 게 업무다. 단점을 보기 시작하면 내 발에 걸려 넘어지는 꼴이다. 그 선택의 기준과 감각을 터득하기 위해 세상의 책을 읽는다. 책의 지혜는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에 드러나기도 한다. 지혜의 불꽃이 점화되고 연소되면서 스스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믿는다. 시인의 목소리는 아득해져도 책의 문장은 갈수록 선명하다. 역시 좋은 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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