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북한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

1 hour ago 3

북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자결제 앱 ‘흰눈전자지갑’(왼쪽)과 ‘삼흥전자지갑’. 복권 구매뿐 아니라 교통비 결제, 공과금 납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DPRK360 페이스북

북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자결제 앱 ‘흰눈전자지갑’(왼쪽)과 ‘삼흥전자지갑’. 복권 구매뿐 아니라 교통비 결제, 공과금 납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DPRK360 페이스북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사람이 굶어 죽는 곳이라면 뭔 짓을 봐도 이상할 게 없지만 그럼에도 기이한 것은 기이하다고 기록할 필요는 있겠다.

요즘 북한에선 머리카락 색깔 단속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자본주의풍을 막는다고 염색을 차단하라는 지시가 하달된 뒤 벌어지는 일이다. 머리를 염색한 사람은 물론 염색해 준 미용사까지 잡아가는 것이야 놀랍지 않다.

하지만 이 소동이 도가 넘어 선천적으로 머리카락이 커피색인 사람까지 거리를 다닐 수 없게 됐다. 무작정 잡혀가서 태어날 때부터 머리카락 색깔이 이렇다고 설명해 봐야 ‘착각하지 않게 검은색으로 염색하라’는 답이 돌아온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다니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소동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이란에선 몇 년 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며 한 여성을 붙잡아 고문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듣도 보도 못한 머리카락 색깔 단속에 열을 올리는 북한은 도대체 무슨 종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전에 이설주도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다닌 적이 있다. 그때 김정은이 머리카락 색깔을 놓고 부부싸움하다가 홧김에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히잡을 쓰라고 강제한 이란에서는 정작 그 지시를 내린 정부 고위층의 자녀들은 히잡 없이 사진을 찍혀도 아무 문제가 없듯이 북한도 마찬가지다. 복장에 머리카락까지 단속하느라 분주하지만, 13세 김주애는 아무리 ‘자본주의 날라리 옷’을 입고 나타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로또 열풍이다. 한쪽에선 굶어 죽어도 한쪽에선 휴대전화로 로또를 사느라 정신이 없다.

로또는 북한 기준으로 암만 따져 봐도 성실한 노동의 대가가 아닌 요행수를 노리는 ‘썩고 병든 자본주의 문화’ 같은데도 열풍이다. 복권이라 불리는 여러 형태의 로또가 존재하는 북한에서 요즘 최고 인기는 달러로 구매하는 ‘달러 복권’이다. 가격은 2달러. 다섯 자리 숫자로 구성돼 있기에 최다 판매 수량은 99999개다. 10만 개를 판매한다고 치면 20만 달러가 들어온다. 게다가 ‘삼흥전자지갑’이라는 스마트폰 앱으로 살 수 있어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자본주의적이다. 1등 상품은 3만9000달러짜리 승용차이고 이어서 2만 달러, 1만 달러, 5000달러, 1000달러 순으로 상품이 있다. 20만 달러어치가 다 팔릴 경우 당첨금 지급 총액은 12만 달러라고 한다. 10만 장이 팔리면 즉시 추첨을 시작한다. 추첨 한 번에 당국이 8만 달러를 남긴다. 현재 평양 시내 전체 택시 수입금이 하루 평균 7만 달러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

진짜 웃긴 점은 추첨 과정이 비공개라는 것이다. 내막을 잘 아는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1등은 복권을 많이 구입한 사람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한다고 한다. 대신 1등은 돈이 많은 사람 가운데서는 뽑지 않는다. 가난한 동네에서 당첨자들이 나와야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믿고 열심히 복권을 사기 때문이다. 앱을 개설할 때 신원 정보를 다 제공하기 때문에 복권 구매자가 돈이 많은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북한 내부에서는 알려진 것이 아니다. 많이 사면 당첨 확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태반이다.

1등 상품이 달러로 지급하는 돈이 아닌 승용차인 것도 이유가 있다. 지난해 북한이 자가용 승용차 보유를 전격 허용하자, 큰 기회라고 생각한 무역회사들이 중국에서 경쟁적으로 승용차를 사 왔다. 그런데 북한 사회 구매력이 한도가 있으니 승용차는 1만 대쯤 팔리고 더 이상 팔리지 않아 재고가 엄청나게 쌓였다. ‘달러 복권’ 아이디어는 차를 팔기 위해 수입업자들이 내놓은 것인데, 당국은 장롱 속 달러를 거둬들이기 위한 좋은 아이디어라고 판단했는지 전격 허용했다.

비공개 추첨 로또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라면 폭동이 일어날 테지만, 북한은 하도 이상한 곳이라 이상한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올해 모든 매장에 전자결제 리더기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전기도 제대로 보내주지 않으면서 전자결제를 하라고 하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면 조만간 북한에선 지폐가 사라질지 모르겠다. 주민들 돈을 모두 휴대전화에 넣게 한 다음 의무적으로 로또를 사라고 할지 모른다. 로또를 많이 살수록 사회주의 혁명가로 추앙받는 세상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