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산 가전제품의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TV부문 랭킹 1위는 레그자다. 일본 소비자들은 도시바 브랜드로 알고 구매하지만, 레그자의 실소유주는 중국 가전업체 하이센스다. ‘미국 가전의 자랑’인 133년 역사의 제너럴일렉트릭(GE) 역시 중국 하이얼에 2016년 넘어갔다. 중국 업체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손에 넣은 해외 유명 가전 브랜드로 현지 시장을 공략하는 ‘중국식 세계화’ 전략으로 글로벌 영토를 넓혀나가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BCN에 따르면 일본 TV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 점유율은 지난해 처음 50%를 돌파했다. 레그자가 25.4%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하이센스(레그자 제외·15.7%)와 TCL(9.7%)이 3, 4위에 올랐다. 일본 샤프가 20.6%(2위)로 체면치레를 했을 뿐 소니(9.6%)와 파나소닉(8.8%)은 5, 6위로 밀렸다.
중국산 가전이 일본을 뚫은 배경에는 M&A가 있다. 하이센스는 2017년 도시바 TV사업부(레그자)를, 메이디는 도시바 백색가전 사업을 인수했다. 산요 가전사업부는 2012년 하이얼에 넘어갔다. 중국 기업들은 브랜드명은 그대로 둔 채 ‘반값 제품’을 쏟아내며 일본 시장을 공략했다. 사실상 하이센스가 만든 레그자의 55형 스마트TV는 10만엔으로, 동급 일본 파나소닉 제품의 절반 가격이다. 모리 에이지 BCN리서치 대표는 “일본에서 가성비 제품 수요가 늘면서 중국산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M&A를 활용한 중국의 영토 확장 무대는 전 세계로 뻗어 있다. 하이얼은 2016년 미국 GE 가전부문을 54억달러(당시 약 6조5000억원)에 인수하며 1%이던 미국 시장 점유율을 지난해 17%로 끌어올렸다. 하이얼은 2019년 이탈리아 가전기업 캔디도 사들였다. 하이센스는 2018년 동유럽 최대 가전업체 고렌예를 인수하고 현지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TCL, 하이센스, 샤오미 등 중국 3사의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출하량 기준)은 31.3%로 처음 한국(28.4%)을 넘어섰다. 특히 75형 이상 초대형 TV 분야에서 TCL과 하이센스의 점유율은 각각 15%, 14.6%로 2020년(5.1%, 4.2%) 대비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