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대의 감정, 불안[정덕현의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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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사회 이면에 존재하는 불안·공포
드라마 ‘모자무싸’, 악뮤의 ‘개화’ 위로
사회적 무능을 무가치함으로 낙임찍는 시대
조금은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 지혜 필요

  • 등록 2026-05-14 오전 5:00:00

    수정 2026-05-14 오전 5:00:00

[정덕현 문화평론가] 박해영 작가의 신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가 화제다. 주인공은 20년 째 데뷔를 못하고 있는 영화감독 황동만(구교환 분)이다. 사실 데뷔를 못 했으니 영화감독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자신은 이력서 직업란에 ‘영화감독’이라고 쓰지만 보는 이들은 ‘무직’으로 받아들이기 일쑤니 말이다. 이 인물이 하는 짓이 지금껏 우리가 드라마에서 봤던 주인공들하고는 영 딴판이다. “남 잘되는 거에 미쳐 죽고 남 안되는 거에 행복해 죽는” 이 인물을 함께 영화를 시작했던 동료들(그들은 모두 감독이 되거나 영화사 대표가 되거나 제작사 대표가 됐다)은 못 견뎌 한다. 아무도 듣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고 늘 민폐를 끼치는 그를 동료들은 왕따시킨다.

보통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황동만은 누가 봐도 주변 사람들이 슬슬 피하는 게 당연해 보이는 ‘민폐 캐릭터’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쉽게 이 인물을 버리지 않는다. 대신 그 인물이 왜 그렇게 됐는가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러자 그에게서 하나의 감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사회에서 배제돼 자신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 공포’의 감정이다. 세상의 잣대로부터 밀려나 투명인간이 돼 버릴 것 같은 극도의 불안 속에서 황동만은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라는 걸 알리기 위해 끝없이 떠들고 아무도 없는 뒷동산에 올라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불안하게 하는 걸까. 그 해답은 이 드라마의 제목에 담겨 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 무가치하다고 여겨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의 다른 말이다. 여기서 자신의 가치란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요리사는 요리를 잘해야 하고 교사는 잘 가르쳐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무능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그 무능함으로 그 사람 자체를 ‘무가치하다’고 낙인찍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일까. 게다가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능력이란 그 가치 기준이 훨씬 높다. 명문대를 나와야 하고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하며 가정을 꾸리고 강남에 몇 평 이상의 아파트를 자가로 갖고 있어야 능력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니 무가치하다고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해도 그 가치를 증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오징어 게임’처럼 무한 경쟁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건 불안 공포다. 가치 있는 삶이라고 인정받지 못해 그 바깥으로 배제되면 점점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최근 한 달 넘게 음악 차트를 석권하고 있는 악동뮤지션의 새 앨범 ‘개화’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시대 감정으로 자리하게 된 ‘불안’을 보여준다. 여기 수록된 ‘소문의 낙원’이라는 곡이 그렇다. 이 목가적인 평화로움을 주는, 어찌 보면 너무나 심심해 보이는 노래가 차트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면에는 이 도시의 ‘불안’이 어른거린다. ‘잠깐 앉아요. 따뜻한 수프와 고기가 있어요. 지친 나그네여. 도시에선 절대 알 수 없는 게 있죠’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는 도시의 경쟁적인 삶에 지치고 병든 우리를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나 ‘소문의 낙원’으로 오라고 손짓한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저마다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나온 일단의 청년들이 춤이라고 보기도 뭣한 너무나 단순하고 간단한 춤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추는 한가로운 광경을 보다 보면 저절로 어깨에 힘이 빠지는 마법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칼군무에 자극을 더한 K팝의 도파민에 피로감을 느낀 대중이라면 이 ‘힘 빠지는’ 노래가 왜 마음까지 위로하는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도시의 삶이 주는 불안감 속에서 끝없이 쏟아져나오는 정보들에 우리는 얼마나 강박적으로 빠져들었던가. 그걸 따라잡지 못하면 마치 사회의 일원에서 배제돼 저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우리는 지쳤던 것이다. 실제로 이 노래는 3년 간이나 긴 슬럼프와 번아웃으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이찬혁의 동생 이수현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준 곡이다. 천재 오빠의 노래를 통한 위로는 그렇게 동생에게 닿았고 그렇게 나온 노래는 우리들의 지친 마음에도 닿았다.

이 앨범에 수록된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곡도 이른바 ‘기쁨’만이 지상과제처럼 추구되는 사회의 강박에 ‘슬픔’의 가치를 말하는 노래다. 보통 우리는 슬픔 뒤에 기쁨이 온다고 말하지만 이 노래는 정반대로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노래한다. 이찬혁은 이런 가사를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슬픔이라는 감정 역시 기쁨의 소중함에서 왔다는 깨달음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건 피하거나 버릴 게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으로 품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가 아니면 인생 낙오자가 될 것 같고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 아니면 망한 것 같아서 우리는 그토록 기쁨에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기쁘지 않은 마음이 진짜 기뻐질까. 오히려 슬픔까지 아름답다고 받아들이는 마음이어야 진짜 기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이 노래는 그런 질문들과 함께 언제 슬픔이 닥칠지 몰라 늘 불안해하는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황동만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그린 ‘모자무싸’를 보고 악동뮤지션의 ‘개화’에 담긴 노래들을 듣다 보면 거기에 어른거리는 우리 시대의 불안이 느껴진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으면 무가치하다고 낙인찍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존재의 불안. 조금은 내려놓고 쉬어가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대다.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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