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이 생기면 좋겠어요”…고독한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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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외로운 ‘솔로’예요. 감기, 몸살 걸리면 물 한 잔 떠줄 사람도 없는걸…. 짝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돈화문국악당.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 행사에서 ‘추억’이라는 명찰을 가슴에 단 할아버지가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스테파니’라는 닉네임의 할머니는 이상형을 묻자 “스마트한 남자요”라며 웃었다. 행사장에는 가요 ‘내 나이가 어때서’가 흥겹게 울려 퍼졌다.

이 행사는 종로구가 65세 이상 배우자 없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마련한 ‘솔로 교류 프로그램’이다. 구 관계자는 “어르신 버전 ‘나는 솔로’인 셈”이라고 말했다. ‘나는 솔로’는 독신 남녀가 합숙하며 인연을 찾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처럼, 이날 행사에 참가한 36명도 본명 대신 닉네임을 달고 무대에 올랐다. 종로구는 “종로구민만 모집했는데, 지방에서까지 ‘참여할 수 없느냐’고 문의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전했다.

● 어르신 관계 회복, 복지의 새 흐름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지자체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생계 지원을 넘어 노인의 사회적 관계망을 복원해 외로움과 고립을 줄이려는 복지 사업이 곳곳에서 늘고 있다.

종로구의 교류 행사도 그 일환이었다. 이날 ‘초원’ ‘노을’ ‘목련’ ‘희망’ 등 닉네임을 단 어르신들은 “절에 다닌다” “자녀는 지방에 산다” 같은 일상 이야기부터 건강 비결까지 나누며 관계를 형성했다. 20분간 1 대 1 대화까지 거친 끝에 총 7쌍(14명)의 커플이 탄생했다.

노년층의 사회적 관계망 회복을 돕는 사업은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은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해 어르신과 주민을 짝지어 식사하며 안부를 살피게 하고 있다. 충북 진천군의 ‘행복 울타리’는 텃밭 가꾸기·원예 치료·요리 모임 등으로 마음의 안정을 돕는다. 경북 칠곡군의 할머니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와 강원 춘천시의 힙합 동아리 ‘BB크루’도 지역의 사회적 관계망 개선 프로그램에서 만난 고령층이 활동을 계속하며 이름을 알린 케이스다. 지자체가 노인들의 사회관계망 회복에 힘을 쏟는 이유는 대인 관계와 노인 건강이 직결되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9920명을 분석한 결과 사회활동에 적극적인 노인일수록 건강 상태가 좋고 만족도가 높았다. 반면 혼자 사는 노인 중 자신을 “건강하다”고 평가한 비율은 34.2%에 불과했다. 통계청의 지난해 고령자 설문을 보면 혼자 사는 65세 이상 중 32.6%가 “대화할 상대가 없어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 전체 가구 중 노인 1인 가구 10% 넘어

국가데이터처의 ‘독거노인가구비율’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65세 이상 1인 가구는 총 228만8807가구로 집계됐다. 2020년 166만711가구였지만, 5년 새 62만 가구가 증가해 약 38% 늘어난 셈이다. 전체 인구 대비 노인 1인 가구의 비중도 2020년 7.9%에서 지난해 10.8%로 늘었다. 27년 뒤인 2052년에는 전체 1인 가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51.6%까지 치솟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추이에 지자체는 물론이고 정부도 대책을 강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안전돌보미서비스’를 통해 홀몸노인 등의 낙상·질병 등 사고를 예방하고, 인공지능(AI) 스피커 등을 활용한 스마트 돌봄 체계를 마련했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통해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 노인에게 생활 지원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 복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망의 질과 지속성을 고려한 맞춤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진영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리 교실이나 문화 체험, 건강 프로그램처럼 지속 가능한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관계 회복이 돌봄 비용을 줄이고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라고 말했다.

송진호 기자jino@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이다겸 인턴기자(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수료)
신예린 인턴기자(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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