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이 작고 귀여워 논쟁 거리
영국 연구자 ‘진화 과정서 집중’설 주장
먹잇감 초식공룡 거대해지자 턱힘 키워
약 8,000만 년에서 6,600만 년 전 지구를 호령했던 이 거대한 포식자 티라노사우루스 렉스(티렉스)는 몸집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고 귀여운 앞다리로 놀림 받아왔다.
다 자란 티라노사우루스의 몸길이는 12미터를 훌쩍 넘겼지만, 앞다리(팔)의 길이는 고작 1미터 남짓에 불과했다. 이 불균형한 신체 비율은 고생물학계에서도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 짧은 팔의 용도를 사냥감을 붙잡아 두는 역할, 짝짓기 때 이성을 유혹하는 도구 등으로 해석해왔다. 심지어 최근에는 여러 마리가 먹이를 뜯어 먹는 난장판 속에서 동료에게 팔을 물려 뜯기는 사고를 막기 위해 줄어들었다는 흥미로운 주장까지 나왔다.
CNN는 25일(현지시간) 이 해묵은 ‘공룡의 제왕’의 수수께끼를 해결할 만한 유력한 단서가 마침내 발견되었다고 보도했다.
국제 학술지 ‘런던 왕립학회 회보 B)’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티라노사우루스의 짧은 앞다리는 머리뼈(두개골)가 거대하고 강력하게 진화하면서 발생한 ‘진화적 타협’의 결과물이다.
연구를 이끈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지구과학과의 박사과정 연구원 찰리 로저 셰러는 진화의 방향이 먹이 사냥을 위해 앞다리(팔) 크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거대한 먹잇감을 제압하기 위해 머리를 주 무기로 선택했다면, 굳이 무겁고 긴 팔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진화는 과감하게 팔의 크기를 줄이고, 그 자원을 머리뼈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턱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하도록 설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총 85종의 공룡 화석과 기존 연구 데이터를 샅샅이 분석했다. 특히 공룡의 머리뼈 크기, 뼈들이 맞물린 구조, 그리고 치악력(무는 힘) 등을 종합해 두개골의 ‘강력함’을 수치화하는 새로운 분석 방법을 도입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티라노사우루스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티라노사우루스보다 약 3000만 년 전의 아르헨티나를 지배했던 거대 육식공룡 ‘티라노티탄’이었다.
이번 연구가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단순히 티라노사우루스 한 종의 비밀만 풀었기 때문이 아니다. 연구진은 왕성한 머리뼈와 빈약한 앞다리의 상관관계가 육식공룡 세계 전반에 걸쳐 나타난 ‘보편적인 진화적 트렌드’였음을 세계 최초로 통계학적으로 증명해 냈다.
티라노사우루스과뿐만 아니라 케라토사우루스과, 메갈로사우루스과, 아벨리사우루스과,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과 등 총 5개의 서로 다른 육식공룡 그룹에서 동일한 현상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트라이아스기 시작부터 백악기 말 운석 충돌로 멸종할 때까지, 무려 1억 8000만 년 동안 지구 각지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한 두 발 보행 육식공룡들이다.
먹잇감인 대형 초식공룡들이 점점 더 거대해지자, 이 포식자들은 저마다 최강의 무기인 ‘머리’를 업그레이드하며 맞대응했다. 사냥할 때 몸을 날려 발톱으로 싸우는 대신, 오직 무시무시한 대가리를 들이밀어 한 번에 숨통을 끊어버리는 방식을 택한 것. 이 과정에서 쓰임새가 줄어든 팔은 자연스럽게 퇴화했다.
다만 그룹마다 줄어드는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공룡은 손가락 개수부터 줄여나갔고, 어떤 공룡은 전반적인 팔뚝 길이부터 단축했다. 결국 도달한 목적지는 같았지만, 그 행로가 달랐던 셈이다. 반면 나뭇가지를 끌어당기거나 포식자로부터 몸을 지켜야 했던 대형 초식공룡들은 머리가 커져도 긴 팔을 그대로 유지했다.
물론 이 짧아진 팔이 완벽한 무용지물은 아니었다. 셰러 연구원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작더라도 어떤 기능이 있었음을 뜻한다“며, 그 구체적인 쓰임새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브리스틀 대학교의 안드레 로우 박사는 “티라노사우루스가 가장 유명하지만, 아벨리사우루스 같은 어떤 그룹은 몸집 대비 팔이 훨씬 더 심하게 줄어들었다”며, “모든 포식 공룡이 이 길을 택한 것은 아니며, 거대한 팔과 발톱을 유지한 채 진화한 라인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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