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강의 문학을 읽는 것은 한강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

1 week ago 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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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사진)의 문학을 읽는 일은 한강을 읽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한강의 많은 작품에는 실제 저자를 연상시키는 작중 인물들이 등장한다. 5·18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는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통상의 경우처럼 ‘작가 후기’ 형태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 마지막 장인 에필로그를 통해 드러난다. “나의 가족이 떠나온 도시, 내가 태어나 유년을 보낸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 폭력의 참상을 “압도적인 고통” 속에서 써낼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들에 대한 고백이 작품 안에서 고스란히 말해지고 있다.

한강이 2016년 맨부커상을 받고 국제적으로 저명한 작가가 된 이후 출간된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경하라는 인물이 바로 작가의 분신이다. 그는 “2014년 여름, (…)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즉 <소년이 온다>의 작가 한강으로서 작품 안에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4·3 사태의 비극 속에서 희생된 오빠의 남은 뼈 한 조각이라도 찾고 싶었던 정심이라는 인물의 고통과 인내가 딸 인선과 그의 친구 경하를 거쳐 독자에게 전달된다. 경하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는 타인의 고통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겪는 존재가 돼 있다.

한강 문학을 읽는 일이 한강을 읽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처럼 작가의 분신이 작품 안에 등장한다는 자명한 사실 말고도, 더불어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그의 작품만큼 유명해졌다는 최근의 변화된 사정 말고도 더 중요한 사실을 음미해볼 수 있다.

빛과 실 


한강 지음
문학과지성사
172쪽│1만5000원

빛과 실 한강 지음 문학과지성사 172쪽│1만5000원

노벨상 수상 연설과 작가의 신작 산문 등을 담고 있는 <빛과 실>(문학과지성사, 2025)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그간 한강의 작품을 읽는 독자는 작가가 고통 속에서 마주한 다음과 같은 질문들과 똑같이 대면해야 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등의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그것이다.

이 불가능한 질문들과 관련해 한강의 문학을 읽는 실감은 바로 저자의 존재로부터 가능해진다고 말하고 싶다.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역사적 비극을 재현하는 일, 말하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말이 지닌 폭력을 거절하는 일, 고통스럽게 죽은 자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 연약한 육체를 지닌 인간이 세상의 거대한 폭력에 맞설 힘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일 등 이 모든 가능하지 않아 보이는 일을 작품의 안과 밖에서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저자의 존재로부터 한강 소설의 의미가 생겨난다. 한강 소설을 읽는 일이 한강을 읽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말은 이렇게 이해된다.

<채식주의자>를 통해 인간이 완벽히 결백해지는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이 아닌지를 물은 작가는 그 이후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지만, 국가 폭력의 상흔을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서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빛과 실>에 실린 신작 산문 ‘북향 정원’과 ‘정원 일기’에서는 햇빛이 잘 안 드는 북향의 아담한 정원에서 15분마다 거울 위치를 바꾸며 식물들에게 빛과 생명을 전해주기 위해 조용히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오랫동안 갈망해온 눈부시게 밝은 소설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내고야 마는 그 정성스러운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산 자가 죽은 자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에 대한 응답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아름다운 금실”이라고 적었던 열 살의 소녀 한강은 이미 이런 사실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고통과 아름다움, 참혹과 존엄, 침묵과 말 사이, 우리를 살게끔 하는 밝은 빛과 우리의 마음 사이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금실을 직조해내어 그가 보여줄 다음 작품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다.

조연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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