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육체’는 어떻게 운명을 파멸로 이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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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데이비드 솔로이 지음·송예슬 옮김/475쪽·1만8800원·서해문집

헝가리에 사는 열다섯 살 소년 이슈트반. 새로운 동네로 이사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앞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집에 찾아온다. 아주머니는 이슈트반에게 장보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엄마의 권유에 못 이겨 이슈트반은 아주머니를 따라 나선다. 그런데 장보기를 마치고 아주머니의 집에서 간식을 먹던 어느 날, 그녀가 묻는다. “키스해도 될까?”

이 기묘한 경험은 더욱 은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분명 ‘못생기고 늙은’ 아주머니였는데, 어느 순간 이슈트반은 ‘보고 싶다’는 감정을 느낀다. 심지어 “사랑한다”고 말해 버리기까지 하는데…. 그날부터 아주머니는 이슈트반을 피하기 시작하고, 이슈트반은 아주머니 집까지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의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남편이 계단에서 추락해 숨지는 일까지 벌어진다.

평범한 소년에게 닥친 우연한 비극을 시작으로 중년기까지의 삶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10대 소년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헝가리의 주택 단지부터 영국의 상류 사회까지 다양한 시공간을 거치며 계급을 이동하다가 결국 몰락에 이른다. 지난해 영국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으로 남성성과 계급, 트라우마, 성, 권력 등의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독특한 점은 소설의 구술 방식이다. 책은 강박적으로 현재 시제를 쓰고 있는데, 이 때문에 속도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여백도 공존한다. 눈앞의 상황을 묘사하는 듯한 문체이기에 이슈트반의 감정과 해석이 잘 드러나지 않는 탓이다. 이슈트반은 그저 소년원에 가고, 이라크 전쟁터에 나가고, 불륜을 저지르는 등 인생의 주요한 순간들을 몸으로 겪어낼 뿐이다.

그래서 원제 또한 ‘플레시(Flesh)’, 육체다. 모든 것이 이슈트반을 파멸로 몰아넣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기이함을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육체에 빗댔다. 살면서 마주하는 통제 불가능한 우연과 운명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한 인간을 보며, 수반하는 고통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어둡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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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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