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 이끌고 해안에서 조개 주운 칼리굴라
명분-목표 모호한 이란戰, 더 기괴
곳곳에 도사린 ‘단일실패지점’ 해소가
종전 관계없이, 화급한 우리 생존 문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로마의 폭군에 빗댔던 영미권 매체의 칼럼 제목들이다. 트럼프 1기부터 최근까지 이런 글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일각에서는 너무 나간 비유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을 보면서 칼리굴라의 ‘바다 전쟁’이 떠오르는 것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전’ 등에 따르면 칼리굴라는 브리타니아(영국) 원정을 명분으로 대군을 이끌고 갈리아(프랑스) 해안까지 진군했다. 그런데 칼리굴라는 도버 해협을 건너는 대신, 텅 빈 바다를 향해 전투태세를 취하게 했다가 갑자기 병사들에게 조개를 줍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바다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전리품인 조개껍데기를 들고 로마로 ‘개선’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고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행태다. 그러나 황당함에 있어서는 트럼프의 이란 전쟁도 이에 못지않은 것 같다.
적과 아군을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인명 피해를 부르는 전쟁은 무엇보다 명분과 대의가 중요하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단기간에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전략-전술적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하지만 이란 전쟁의 경우는 명분도, 목표도 분명치 않다. 개전 초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전쟁의 목표로 이란 핵 위협 제거와 정권 교체를 들고나왔다. 이어 지난달 중순에는 목표를 군사적 무력화로 슬쩍 바꾸더니 최근에는 다시 석유 통제라는 이권 챙기기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종전 시점을 놓고도 수시로 말이 바뀐다. 지난달 20일 “군사작전의 점진적 축소 방안을 고려한다”고 해놓고, 하루 뒤인 21일 “지금부터 48시간 내에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하라”며 최후통첩을 했다. 그러다가 시한 만료 직전인 23일에는 돌연 공격을 5일간 보류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다시 기간을 10일 추가 연장했다. 이러다 보니 ‘사람은 바뀌어도 말은 안 바뀌는 이란, 사람은 그대로인데 말만 바뀌는 미국’이라는 풍자가 SNS 등에서 회자된다.
문제는 우리가 이 기괴한 전쟁의 최대 피해국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공급망 쇼크는 유류와 LNG 등 에너지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은 반도체 제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헬륨, 자동차·가전의 핵심인 알루미늄, 식량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尿素)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나프타 공급 부족은 소비재 산업 전반에 걸쳐 심각한 파장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한국으로선 이란 전쟁의 1차적인 쇼크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급한 과제지만, ‘이란 전쟁의 늪’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위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지금과 같은 ‘초(超)연결사회’에서 온 나라가 위태로울 정도의 ‘공급망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은 ‘단일실패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단일실패지점이란 한 부분의 마비가 시스템 전체의 마비로 이어질 수 있는, 그 지점을 뜻한다. 우리에겐 이번 전쟁으로 존재가 확연히 드러난 호르무즈 해협이 대표적 예일 것이다.
심각한 점은 우리에게 단일실패지점이 호르무즈 해협 하나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출입 물동량의 99%를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말라카 해협, 미중 해상 패권 경쟁의 최전선인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도 잠재적 단일실패지점들이다. 또한 단일실패지점은 비단 지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전기차와 스마트폰 첨단가전의 필수 소재인 희토류의 8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또한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전개 양상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치명적인 급소가 될 수 있는 단일실패지점이다.
칼리굴라의 바다 전쟁은 황당하고 기괴했지만, 큰 피해를 낳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란 전쟁은 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데다 세계 경제를 대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재앙적 결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은 석유가 필요한 나라들이 알아서 관리하라는 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1020일이 남아 있다. 당분간 언제 어디에서 ‘제2, 제3의 호르무즈 봉쇄’가 펼쳐진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번 전쟁의 종전 여부와 상관없이, 곳곳에 도사린 단일실패지점을 해소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존망을 다투는 화급한 과제다.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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