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는 우연히 TV에서 본 ‘빨간 리본’에 단번에 매료됐다. 부모님에게 리듬체조를 시켜달라고 졸랐다. 기계체조 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반대했다. 운동으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모지나 다름없는 리듬체조라니.
하지만 딸은 3년을 끈질기게 고집을 피웠다. 결국 부모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원조 ‘리듬체조 요정’ 신수지는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목표는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는 거였다. 너무나 간절했던 터라 하루 10시간의 훈련도 기꺼이 이겨냈다. 함께 시작했던 동료들이 힘든 훈련에 하나둘씩 포기했지만 그만은 끝까지 남았다.
세계적인 기술을 익히기 위해 고등학교 1학년 때 러시아로 훈련을 갔다. 유일한 동양인 소녀였던 그는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다.하지만 그는 항상 긍정적이었다. 표정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는 힘든 동작을 할 때도 웃으면서 했다. 러시아 리듬체조 대모로 불리던 이리나 비네르 당시 러시아체조협회장이 그런 신수지를 예쁘게 봤다. 비네르 회장은 훈련부터 일상생활까지 신수지를 각별하게 챙겼다.

리듬체조 선수에게 훈련만큼 힘든 게 식단 조절이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음식을 섭취한다. 아침은 요거트 위주로 간단하게 먹고 난 뒤 곧바로 운동을 시작한다. 쌩쌩이 1000개과 복근 운동 등 체력 훈련 위주다. 점심은 탄수화물을 살짝 넘고 저녁도 단백질 위주로 가볍게 먹는다. 오후 이후엔 기술 훈련을 한다. 혼자 전지훈련을 온 신수지는 더더욱 엄격하게 관리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를 경계하던 러시아 선수들의 눈에도 그가 안쓰럽게 보였나 보다. 몰래 숨겨놓은 초코파이를 하나씩 건네곤 했다. 한입에 먹기엔 너무 아까웠다. 신수지는 “초코파이를 주무르고 또 주물러서 끈적한 떡처럼 만들었다. 너무 배가 고프고 싶을 때마다 손톱만큼 떼어먹곤 했다”고 했다.

신수지 이후 리듬체조를 하는 선수들이 점점 늘어났다. 신수지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발목 인대 부상을 안고 후배들과 함께 단체전에 출전해 4위를 했다. 동메달에는 단 0.1점이 모자랐다. 주요 국제대회 메달은 없었지만 한국 리듬체조는 신수지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신수지가 정작 국민적인 화제를 모은 건 2011년 은퇴 이후다. 2013년 신수지는 프로야구 두산 안방 경기의 시구자로 마운드에 섰는데 이때 그가 선보인 360도 회전 시구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신수지는 “체조 선수 출신다운 시구를 고민하다가 선수 때 장기였던 백 일루전(Back Illusion·한 다리를 축으로 다른 다리를 360도 수직 회전해 원을 만드는 기술)을 응용해 앞으로 도는 일루전을 한 뒤 공을 던졌다”고 했다. 이 시구는 역대 한국프로야구 시구사에서 역대 최고의 시구 중 하나로 꼽힌다. 얼마나 큰 화제가 됐는지 신수지의 시구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도 대대적으로 소개됐다. 신수지는 “체조 선수 시절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긴 했는데 아무래도 시구 이후에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크게 늘었다”라며 “일루전 시구 후 여기저기서 많이 불러주셔서 머리카락으로 바닥 청소를 많이 쓸고 다녔던 것 같다”라며 웃었다.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신수지는 이후 각종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 신수지의 시작이었다. 이 모든 게 우연만은 아니다. 리듬체조 선수를 할 때부터 그는 한 곳에 꽂히면 무서울 정도로 열심히 했다. 시구 역시 마찬가지다. 시구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그는 혼자서 피칭 연습을 시작했다. 하루 150개씩 이틀간 300개를 던졌다. 그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 존 비슷한 곳에 꽂힌 것도 그런 이유다.
신수지는 이후 볼링, 양궁, 씨름, 아이스하키에 이어 야구까지 수많은 종목을 섭렵했다. 어떤 종목을 하더라도 하는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다. 볼링을 칠 때는 삼시세끼를 볼링장에서 먹으며 훈련해 프로 자격증까지 땄다.
최근 몇 년간 집중하고 있는 건 골프다. 은퇴 후 신수지도 보통 사람들처럼 적지 않은 굴곡을 겪었다. “탁 트인 공간에 가서 활동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골프채를 잡았다.

리듬체조를 할 때처럼, 볼링을 칠 때처럼 골프도 열심히 했다. 하루에 드라이버만 1000개를 친 날도 있다. 1년도 안 돼 싱글을 쳤고, 2년 차에 이븐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3년 차에 2언더파까지 쳤다. 신수지는 “3년간 하루도 연습장을 거르지 않았다. 지방에 행사를 갈 때도 일정을 마친 후 혼자 골프백을 들고 인근 연습장을 찾아 공을 쳤다”라며 “공을 쪼갤 때의 손맛과 희열이 좋았다. 평소 꾹꾹 눌러살다가 드라이버로 공을 빵빵 때리자 마음이 시원해졌다”고 했다. 그는 스포츠와는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신수지는 요즘도 주 5, 6회씩 피스니스센터를 찾는다. 신수지는 “생각이 많아지면 잠이 잘 오질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운동이다. 몸을 ‘괴롭히면’ 깊은 잠을 잘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피클볼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그는 ‘여행’으로 힐링을 한다.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틈이 생기면 평소 가고 싶었던 여행지로 가서 모든 걸 내려놓고 재충전을 한다. 신수지는 “예전에는 너무 나를 가둬놓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그것 자체가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스포테이너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도 대한체육회 홍보미디어위원과 대전시체조협회 부회장을 맡으며 체육계와의 인연도 이어가고 있다. 리듬체조 유망주들을 위한 캠프에도 참가한다. 최근에는 선수로 활동할 때의 경험을 살려 압박스타킹 제조, 판매 사업도 시작했다. 신수지는 “제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고충을 담아서 스타킹을 만들었다. 12시간을 서 있어도 다리가 붓지 않는다”라며 “방송과 사업 등 건강하게 지내며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가장 어려울 것 같지만 더 늦기 전에 단란한 가정도 꾸리고 싶다”며 웃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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