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 포인트' 움켜쥔 국가, 글로벌 무역전쟁 패권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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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보다 병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일어난 지 1년 만에 미국·이란 전쟁을 맞자 세계 산업계에서 병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등 ‘물리적 병목’ 지점과 원자재 수출 규제 같은 ‘공급망 병목’이 국가 간 분쟁에서 미국 관세정책보다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력과 군사력 등에서 열세인 나라도 병목 지점을 움켜쥐면 상대방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전쟁을 통해 확인됐다. 헬륨 등 첨단산업 소재,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의 병목을 통제할 수 있는 국가들이 글로벌 경제 전쟁 승패를 좌우할 핵심 축으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초크 포인트' 움켜쥔 국가, 글로벌 무역전쟁 패권 잡는다

◇관세는 대체 시장으로 우회

지정학 전문가인 에드워드 피시먼은 지난달 한국에서 출간한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에서 병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각각의 병목이 세계 경제를 누르는 초크포인트(choke point·질식점)가 되고, 이를 장악하는 국가가 세계 패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서 피시먼은 전략적 병목을 구성하는 요건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특정 국가·조직이 해당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 또는 가격에 영향을 미칠 만큼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대체재를 단기적으로 찾기 어렵고, 전략적 병목을 봉쇄하는 게 자신보다 적에게 손해가 커야 한다.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공급망 관련 병목 장악이 관세보다 강력한 무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 사례가 약 1년 전 시작한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다.

작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34%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고 대(對)중국 무역 전쟁을 선포했다. 중국의 반격 카드는 항공·우주 분야 핵심 소재인 희토류 수출 제한이었다. 이에 첨단 제조업이 올스톱 위기에 처한 미국은 중국과 휴전을 모색했다.

여기서 미국 관세는 중국의 희토류 통제에 밀렸다는 것이 WSJ의 분석이다. 희토류와 달리 관세로 접근을 막은 미국 시장 자체는 전략적 병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수입 점유율은 13% 수준에 그쳐 중국은 대체 시장으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WSJ는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은 관세 때문에 감소했지만, 다른 국가에 대한 수출이 감소분을 충분히 만회했다”고 설명했다.

◇곡물 운송로도 ‘병목’ 역할

공급망 병목은 중동 전쟁에서도 ‘게임체인저’ 역할을 한다. 이란이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하자 미국이 힘을 못 쓰고 있다. 해협 봉쇄에 따른 유가 상승이 각국 경제에 부담을 주자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지난달 소득 증가율(0.2%)이 전월(1.6%) 대비 둔화하고 근로자의 주당 근로 시간이 감소하는 등 경제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산업계에선 호르무즈해협, 희토류 말고도 전략적 역할을 하는 물리적·경제적 병목이 많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물리적 병목으론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수에즈운하, 러시아·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의 핵심 통로로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해협, 다르다넬스해협 등이다. 경제적 병목도 적지 않다. 대만 TSMC가 72%(지난해 4분기 기준) 점유율을 차지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한국 기업이 시장의 68.1%를 장악하고 있는 D램, 일본 기업이 90% 이상 장악한 포토레지스트 등 첨단 소재도 전략적 병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中 황산 무기로 공급망 통제

앞으로도 물리적·경제적 병목은 글로벌 경제 전쟁 승패를 좌우하는 전략 자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움직임에 나섰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다음달부터 황산 수출을 중단할 계획이다. 황산은 구리·아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로 인산비료 생산뿐 아니라 구리 생산·정유·배터리 등 산업 전반에 쓰이는 핵심 기초소재다.

전략적 병목을 쥔 국가와 ‘경제 동맹’을 맺으려는 움직임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WSJ에 따르면 <상업의 지배: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 경제력 우위>를 쓴 벤 베이글과 스티븐 브룩스는 “미국이 동맹국과 함께 핵심 기술이나 시장 접근권을 차단함으로써 경쟁국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동맹국은 미국의 미미한 경제적 우위를 압도적 우위로 전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황정수 기자/베이징=김은정 특파원

▶초크포인트(chokepoint)

갑자기 통로가 좁아지는 ‘병목 지점’을 뜻하는 단어. 최근엔 공급망이나 해협·운하 같은 물류 관련 전략적 요충지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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