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보다 강한 ‘균’…전염병이 인류사 좌우했다

1 day ago 1

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
조너선 케네디 지음·조현욱 옮김
408쪽·2만3800원
아카넷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건 ‘총’과 ‘쇠’ 덕도 있지만 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 진짜 원인이라고 분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과거 유럽의 병원균에 노출된 적 없던 원주민은 감기나 장염에도 치명적 증상을 보였다. 1518년 발생한 천연두 탓에 원주민 인구 최소 3분의1이 사망했다. “정복자들의 무기는 충격 효과를 주긴 했으나 원주민의 무기보다 효율적이지도, 강력하지도 않았다. 답은 균, 균, 균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중세, 근현대에 이르는 인류사 속에서 ‘균’이 벌인 일들을 폭넓게 짚은 책이다. 영국 런던퀸메리대에서 글로벌 공중 보건에 대해 가르치는 사회학자가 썼다. 저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드론 공격이 파키스탄의 소아마비 퇴치 노력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 등을 연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호모사피엔스가 여러 인간종 중 홀로 살아남아 현 인류의 조상이 된 것이 ‘인지적 우월성’ 덕택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네안데르탈인은 동굴 벽화를 그린 최초의 인간종으로서 인지적으로 열등하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격차는 면역 체계에 있었다.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의 병원균에 대응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졌으나 네안데르탈인은 아니었다. 즉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것은 호모사피엔스가 가져온 병원균이란 주장이다.

종교적 변혁마저 전염병이 좌지우지했다는 해석은 눈길을 끈다. 책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변두리 종파’에서 대중 종교로 갑자기 변모한 배경을 균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저자는 “2, 3세기 치명적인 전염병이 로마제국을 강타했을 때 기독교 신앙은 다신교보다 매력적이고 확실한 삶과 죽음의 지침을 제공했기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이 초토화됐을 땐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가톨릭 교회를 향한 불신과 반발이 크게 확산했다. 저자는 “가난한 이들을 위로할 시간이 없는 교구 사제들과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자처하는 교황을 겨냥한 움직임이 본격화했다”고 했다.

책은 오늘날 전염병과 불평등 간 연관성을 짚으면서 논의를 확장한다. 팬데믹으로 국가 간, 국가 내 불평등이 드러났다. 영국에서는 가장 가난한 지역의 성인이 부유한 지역보다 코로나19로 사망할 확률이 약 4배로 높았다. 가난한 이들은 재택근무가 어려운 일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비만, 당뇨병, 천식 등 요인을 이미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컸다.

인류에게 끊임없이 도전한 병원균의 위협에서 살아남을 해법으로 저자는 ‘협력’을 제시한다. 세계적으로 기본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고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저자는 “19, 20세기 고소득 국가들의 건강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은 의학 발전이나 경제 성장 덕분이 아니었다. 식수, 위생 등에 대규모로 투자한 정치적 결정이 가져온 성과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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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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