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수 성균관장의 ‘장무상망’ 20년

1 day ago 3

추사 김정희 관련 자료 2750점 등
한국에 기증한 故후지즈카씨
숭고한 마음 못잊어 매년 묘소 찾아
“달리 보답할 길 없어 안타까워”

4일 일본 도쿄 인근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 씨 묘소를 참배한 최종수 성균관장(가운데)과 김기세 전 과천시 부시장(왼쪽), 고미술전문가 김영복 씨. 최 관장은 “세한도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과 자료를 조건 없이 돌려준 후지즈카 부자의 숭고한 마음에 지금도 머리가 숙여진다”고 했다. 
최종수 관장 제공

4일 일본 도쿄 인근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 씨 묘소를 참배한 최종수 성균관장(가운데)과 김기세 전 과천시 부시장(왼쪽), 고미술전문가 김영복 씨. 최 관장은 “세한도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과 자료를 조건 없이 돌려준 후지즈카 부자의 숭고한 마음에 지금도 머리가 숙여진다”고 했다. 최종수 관장 제공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준 세한도(歲寒圖)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란 낙관이 찍혀 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이다.

그 마음은 시공을 넘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06년 2월 추사가 이상적에게 보낸 편지 ‘기우선(寄藕船·우선은 이상적의 호)’ 등 20여 점을 포함해 추사 관련 자료 2750여 점과 청나라·조선 자료 1만5000여 점을 기증한 고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1912∼2006) 씨와 최종수 성균관장과의 인연이다. 당시 후지즈카 씨를 설득해 유물을 기증받은 최 관장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지금까지 매년 기일(7월 4일)에 그의 묘소를 찾고 있다. 1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에서 만난 최 관장은 “고인이 보여준 귀한 마음에 달리 보답할 길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20년 세월의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후지즈카 선생은 기증 몇 달 뒤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보답도 바라지 않고, 오히려 연구에 써달라며 200만 엔(약 1822만 원)을 한국에 기부하셨지요. 그런 분의 숭고한 마음을 돌아가셨다고 잊을 수는 없어서….”

추사는 말년을 경기 과천에서 보냈다. 2005년 과천문화원장으로 각종 추사 관련 사업과 연구를 추진하던 최 관장은 1944년 세한도를 기증한 ‘추사 마니아’ 후지즈카 지카시(藤塚隣·1879∼1948) 교수 집안에 유물과 자료가 더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여겨 백방으로 후손들을 찾았다. 그 아들이 후지즈카 아키나오 씨다.

―후지즈카 교수가 모은 추사의 많은 작품은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다 불타지 않았습니까?

“그곳은 연구소였거든요. 그래서 집에 뭐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싶었지요. 아들 후지즈카 선생의 집은 도쿄 변두리더라고요. 오래된 일본식 가정집인데, 그곳에 상당한 추사 관련 유물 및 자료가 남아 있었던 거죠.”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몇 번을 찾아가도 처음엔 아무것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셨어요.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지요. 그렇게 허탕 친 어느 날 아침인데, 전화가 와 ‘언제 출국하냐’라고 묻더군요. ‘오늘 밤’이라고 했더니 ‘그러면 잠시 들러 달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더군요.”

―일종의 시험을 한 건가요.

“후지즈카 씨는 학자가 아니었기에 추사 관련 작품과 자료를 물려받았을 뿐 연구는 못 했습니다. 그게 늘 평생의 숙제였지요. 물려줄 자식도 없었고요. ‘정말로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갈 수 있겠느냐’고 몇 번을 되묻더군요. 조건은 그거 하나였습니다. 2013년 과천 추사박물관이 탄생한 계기지요.” ―외람됩니다만 기증품의 가치가….

“당시 문화재청장이던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기증품을 검토하고 두 가지를 얘기했어요. 정부에 후지즈카 씨 훈장 수여를 건의하겠다는 것과 자신이 쓴 ‘완당평전’을 절판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이 기증받은 자료들을 공부하고 다시 써야겠다고…. 석 달 뒤 국민훈장 목련장이 수여됐고, ‘추사 김정희’(2018년·창비)도 나왔습니다.”

―박물관을 못 보고 돌아가신 게 아쉽습니다.

“90세가 넘다 보니 기증 때도 한국엔 못 오셨습니다. 병원에 계실 때라 훈장도 조카딸이 주일 한국대사관에 가 받았지요. 우리가 직접 찾아가 드렸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몇 년 전 기일을 앞두고 과천시에 ‘돌아가셨지만, 뭐라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그만큼 했으면 된 거 아닙니까’라고 하더군요. 사람과의 관계가 그래서는 안 되는데….”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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