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지원 조례’ 첫 제정
재일제주인 조총련 연관 지어 간첩으로 조작 많아
1963년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 제주에서 농사에 전념하던 청년 김태주는 제주도로부터 ‘농업과수 연수생’으로 선발돼 선진 농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단벌로 연수길에 올랐던 그는 일본에 살고 있던 친척들로부터 중고 양복 한 벌과 만년필 세 자루를 받았다. 제주4·3 당시 고향을 떠났다는 미안함과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선물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만년필이 고장 나자 수리점에 맡겼는데 만년필 안쪽에 ‘CHULLIMA’(천리마)와 ‘조선 청진’이 적혀 있는 것을 본 수리점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그렇게 그는 모진 고문에 시달리며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관계자로부터 양복을 받고, 북한 천리마운동의 성공을 찬양하기 위해 제작한 선전용 만년필을 받은 간첩’으로 낙인찍혀 옥살이를 해야 했다. 간첩 누명의 억울함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던 그는 지난 2018년 12월 3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얼마 뒤인 이듬해 1월 18일 재심 재판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씨처럼 제주에서 발생한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공식적으로 90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전국 유일의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등 인권 증진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2022년부터 4년간 간첩조작사건 피해 실태를 조사해 그 결과를 담은 종합보고서를 18일 공개했다.
조사는 1961년부터 1987년까지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기에 발생한 간첩조작사건 피해자와 그 유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제주에서 발생한 간첩조작사건은 총 38건이며, 피해자는 90명으로 공식 확인됐다. 피해자 대부분은 4·3 이후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제주인과의 일상적인 교류가 공안기관의 수사 과정에서 간첩 누명의 빌미가 된 것으로 파악됐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4·3을 거치며 도피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많은 제주 사람들이 일본으로 이주했다. 실제 1971년 기준 재일제주인은 총 8만6490명으로 전체 재일한국인의 14.1%를 차지했다.
1960~80년대 당시 제주 사람들은 일본에 친척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일본에 살고 있는 가족, 친척, 지인 등과의 교류는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공안기관의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중 제주 출신이 많은 이유로도 작용했다.
제주도는 이번 조사를 통해 당시 정보기관 및 경찰의 연행·구금 과정과 검찰·재판부의 역할이 사건의 형성과 전개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피해자 53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하는 과정에서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및 재심 신청을 지원해 무죄 선고를 이끌어내는 성과도 거뒀다.
조사를 수행한 ‘제주대안연구공동체’는 피해자 지원이 조례에 그치지 말고, 국가 폭력 피해 전반을 포괄하는 국가 단위의 법 제정을 추진해 전국의 유사 피해자와 연계한 제도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이거나 이미 사망해 유족이 법적 절차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 만큼 행정 차원에서 재심과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신청 절차를 안내하고, 피해자 관련 기록 확보를 돕는 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인영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민간 연구기관 주도의 조사를 통해 제주 간첩조작사건 피해를 최초로 종합 정리했다”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인권 증진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제주 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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