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계화로 회귀?...미국 제조업은 부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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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은 이미 늦었으므로 빈번한 자연재해와 이상기후에 적응해야 하는 것처럼 탈세계화 시대에는 자유롭지 않은 교역, 미국 제조업 부활이 가져올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한경ESG]

그린피스는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이전의 기후보호 조치들을 거부한 것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시위를 벌였다./연합뉴스

그린피스는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이전의 기후보호 조치들을 거부한 것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시위를 벌였다./연합뉴스

기후변화는 가짜라며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고, 미국 석유 시추를 독려했던 탈탄소 폐지 정책과 현재의 탈세계화 논리는 동일하게 작용한다. 즉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자들이 받은 충격을 모든 유형의 투자자들이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탈세계화·탈탄소에 손해를 본 공화당 지지층 집결, 중국이 밸류체인을 장악한 산업에 대한 경제적 공격, 중국의 지역 패권 부상에 대한 지정학적 전략 등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이미 늦었으므로 빈번한 자연재해와 이상기후에 적응해야 하는 것처럼 탈세계화 시대에는 자유롭지 않은 교역, 미국 제조업 부활이 가져올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출범시킨 미국의 정치 지형은 철저한 정체성 정치다. 인종적으로는 흑인의 13%만 트럼프를 지지하는 반면, 백인은 과반수가 트럼프를 지지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집권하자마자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을 전면 폐지한 것은 정치적 기반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ESG 개념은 너무 넓은 전선과 비재무적 요인까지 포함하려 했던 시도의 역풍으로 무너지고 있다.

부통령 제임스 벤스는 러스트벨트의 몰락한 백인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이들에게 ‘위대한 미국(MAGA)’이란 처음부터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을 의미했다. 관세 전쟁과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을 시도하는 트럼프는 선거공약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일 뿐이다. 다만 미국의 국내 정치 논리로 치부되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경제 논리와 지정학적 이유로 제조업 부활에 진심으로 보인다.

2025년 4월 9일 발표한 국방 조달 현대화에 관한 행정명령에는 현대전에 군사력뿐 아니라 산업 생산 능력 또한 중요하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조업 생산 역량을 레버리지로 승리했던 경험도 있다. 지금은 미국 내 제조업 생산 기반이 없는 반면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선박 제조 능력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탈세계화로 회귀?...미국 제조업은 부활할까

美 에너지 정책…산업에 미칠 영향은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은 석유 생산 지역 유권자에게 호소하기 위함이지만, 대(對)중국 산업 정책이기도 하다. 중국은 신재생 밸류체인을 장악한 상황이며, 태양광·배터리·전기차 산업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산업 전환 시 중국의 희토류 광물에 의존해야 하는 신재생으로는 아직 전환할 수 없고, 중국 선도 산업의 수익화도 늦출수 있으므로 기후변화는 가짜라고 주장하며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최근 행정명령에서는 아예 미국 석탄은 ‘깨끗하다’며 에너지 자립 의지를 드러내는 중이다.

로봇·인공지능(AI) 기술 자체는 전례가 없지만, 신기술의 등장으로 인류의 생산성 향상이 기대되며 버블이 형성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가깝게는 2000년 인터넷 보급, 1980년 PC 보급, 1920년 라디오·자동차 보급이 있고 멀게는 1840년 영국 철도 버블까지 내려간다. 최초의 자산 버블로 알려진 튤립 버블은 1636년으로 신기술은 아니지만 당시 튤립은 이국적인 신상품이었고, 금방 무너진 이유는 근본적으로 생산성 향상과는 무관했기 때문이다.

제1차 산업혁명은 1760년경 영국에서 시작됐는데, 단순히 신기술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기준으로는 더 뛰어난 혁신 제품을 먼저 만들고 과학기술도 뛰어났던 나라가 많았다. 선박 건조와 인쇄술 등 중세까지 과학기술에서는 중국이 세계를 선도했으며, 철도를 먼저 개발한 것은 영국이 아닌 프랑스였다. 그럼에도 영국에서 먼저 시작된 배경은 석탄 자원, 사유재산을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환경, 계층 이동을 꿈꾸는 기업가 등 다른 나라에 없던 기술 외적인 조건의 조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초기 평균 생산성 향상은 노동의 추가 투입(=한계 생산성)과는 무관해 노동 교섭력이 악화됐다. 분업과 특화에 기반한 대량생산과 자유무역은 경제학을 탄생시켰으나 숙련공은 구시대 유물이 되었으며, 언제든 대체 가능한 노동자의 근무 환경은 산업혁명 후 70년간 악화되거나 정체됐다. 적어도 이 시기 영국 노동자에게 세계화는 도움 되는 것이 아니었고 구조적 모순의 누적으로 1811년 러다이트 운동이 발발했지만 곧바로 노동 여건과 실질 임금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1820년을 지나서야 점진적으로 개선됐다.

트럼프 2기 당선에 기여한 이유로 미국 기술 엘리트들의 정치 영향력이 커졌다. 대표적으로 일론 머스크는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서 임기 두 달 만에 미국 공무원 수십만 명을 해고했고, 공장을 자동화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러스트벨트 저임금 노동자의 정치 동력으로 시작한 미국 제조업 부활은 결과적으로 이들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개연성이 크다.
최근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미국 행정명령은 정부 부서를 AI·로봇으로 자동화할 수 있는 방향이다. 미국인의 높은 임금 수준을 고려할 때 제조업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유일한 방향은 노동 투입을 최소화하는 것뿐이다. 소프트뱅크, 현대차, 엔비디아 등 기업은 실제로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박우열 신한투자증권 ESG팀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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