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미 하원 감독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엡스타인 유산 공동집행인 변호사들에게서 제공받은 문건을 공개했다. 이 중 2003년 엡스타인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고자 제작된 일명 ‘생일 책’에 트럼프 대통령의 편지가 포함돼 화제가 됐다. 타자기로 작성해 출력된 짧은 편지에는 굵은 펜으로 여성의 나체를 묘사한 윤곽선이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필 서명으로 보이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 편지에는 ‘생일 축하해. 하루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비밀이 되기를’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원 감독위원회 민주당 위원들은 전체 문건이 공개되기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편지만 캡처해 X에 공개했다. 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로버트 가르시아 하원의원(캘리포니아)은 X를 통해 전체 문건이 공개되기 전 “트럼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던 ‘생일 책’을 확보했다”며 “대통령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진실을 말하고 엡스타인 관련 파일을 모두 공개하라”라고 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의 사인이 자살이 아니라거나, 그와 교류했던 유명 인사들의 명단인 ‘엡스타인 파일’이 존재한다는 음모론을 부추겨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재집권 후 엡스타인 의혹은 ‘민주당이 만든 사기극’이라며 돌연 태도를 바꿨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 파일에 연루돼 문건을 숨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했다. 특히 그의 강성 지지층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미온적 대처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가 그린 그림도 아니고 서명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여러 정황상 편지를 그가 직접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WSJ는 편지에서 드러난 그림이나 서명 방식이 공개된 트럼프 대통령의 저서에 담긴 내용 등과 대조해 유사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CNN방송은 “핵심은 이 편지가 엡스타인의 유산에서 나왔다는 점” 이라며 “이 편지가 위조품이었다면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어떻게든 엡스타인의 소유물에 이를 심어놨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편지 공개가 엡스타인 파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포함됐다는 의혹을 직접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CNN에 따르면 엡스타인 측 변호사들은 하원 감독위원회가 ‘엡스타인이 중개한 성매매에 연루된 잠재적 고객 목록’을 요청하자 “(목록의) 존재 여부를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관련 문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현재 입장과 일치한다.
J D 밴스 부통령은 X에 “민주당이 유일하게 신경 쓰는 건 ‘러시아 게이트’ 같은 가짜 스캔들을 꾸며내 거짓말로 트럼프 대통령을 흠집 내는 일뿐”이라며 “누구도 이런 헛소리에 속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제임스 코머 하원 감독위원회 위원장(공화당·켄터키)은 “민주당원들이 자료를 선별적으로 다루고(cherry-picking) 정치화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며 “민주당은 생존자를 위한 정의 실현이 우선인지, 아니면 정치적 목적이 우선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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