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백악관에서 취임했다. 연준 의장 취임식이 백악관에서 열린 것은 1987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앨런 그린스펀 의장을 임명했을 때 이후 39년 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워시 의장의 취임 선서를 직접 주재했다.
장면 자체가 메시지였다. 워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고른 의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제롬 파월 의장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해왔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워시 체제의 금리 인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워시가 원하는 대로 일하도록 둘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과 연준의 충돌이 일단 멈춘 듯 보이는 장면이다.
워시 의장이 받아든 첫 환경은 금리 인하와 거리가 멀다. 연준이 공개한 지난달 28~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의사록은 물가가 여전히 높다고 진단했다. 중동 정세도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로 꼽혔다. 연준은 물가상승률을 2% 목표로 되돌리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채권시장은 이미 물가 부담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30년물 미국 국채금리는 19일 장중 5.189%까지 올랐다. 2007년 7월 이후 약 19년 만에 최고치다. 워시 의장이 주재하는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다음 달 16~17일 열린다. 시장은 첫 회의에서는 동결 가능성을 높게 보지만, 연말 이후에는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반영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8년 전 접어둔 ‘워시 카드’
워시는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2006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연준 이사로 임명됐다. 당시 35세로 최연소 연준 이사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연준 내부에서 위기 대응을 지켜봤고, 2011년 연준을 떠난 뒤에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통화정책과 중앙은행 개혁을 연구했다. 월가와 연준, 보수 성향 싱크탱크를 모두 거친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에도 연준의장으로 워시를 검토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재닛 옐런 당시 연준 의장을 재지명할 수도 있었고, 파월, 워시, 존 테일러, 게리 콘 가운데 새 의장을 고를 수도 있었다. 옐런 유임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의장을 그대로 이어받는 선택이었다. 워시와 테일러는 상대적으로 긴축 색채가 강해 시장을 흔들 수 있는 후보로 평가됐다. 콘은 백악관 내부 인사라는 점에서 연준 독립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을 골랐다. 그는 2017년 11월 파월 지명식에서 미국 경제에 “건전한 통화정책과 신중한 은행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연준에는 “강하고 건전하며 안정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다. 파월은 충격을 주는 후보가 아니라 안정과 연속성의 후보였다. 당시 시장은 파월을 ‘옐런 없는 옐런 노선’으로 받아들였다. 옐런의 정책 연속성은 유지하되, 의장의 얼굴은 바꾸는 선택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가 임명한 의장을 그대로 두지 않으면서도, 시장을 크게 흔들지 않는 카드를 고른 셈이었다.
8년이 지났다. 워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 변화의 출발점에는 파월이 있다. 파월은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의장이었지만, 끝내 트럼프 대통령의 의장이 되지 않았다.
트럼프가 임명했지만 소유하지 못한 파월
실제로 균열은 임기 초반부터 드러났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의 금리 인상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19년 2월에는 파월 의장을 백악관 만찬에 불렀다. 만찬 직후 연준은 공식 성명을 냈다. 파월 의장은 그 자리에서 향후 통화정책 경로를 논의하지 않았고, 정책 경로는 전적으로 경제 정보와 전망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결정이 “신중하고 객관적이며 비정치적인 분석”에 근거한다고 못 박았다. 대통령이 의장을 부를 수는 있지만, 정책 경로까지 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분명히 그은 셈이었다.
파월 의장은 2022년 8월 잭슨홀 연설에서 더 분명하게 방향을 잡았다. 그는 연준의 최우선 과제가 인플레이션 목표를 2%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했다. 파월 의장은 “물가 안정 없이는 경제가 누구에게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고금리와 성장 둔화, 노동시장 약화가 가계와 기업에 고통을 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물가 안정 회복에 실패하면 “훨씬 더 큰 고통”이 따른다고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처음에는 연속성의 후보였다. 그러나 2022년 이후에는 연준 신뢰를 회복하는 쪽을 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낮은 금리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트럼프 2기 들어 충돌은 더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광범위한 관세 정책을 폈다. 모든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에는 145%까지 매겼다. 2025년 4월 2일 추가 관세 발표 직후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90일 유예를 내놓기도 했다. 관세는 성장에는 부담을 주고 물가에는 압력을 주는 정책이다. 연준이 금리를 쉽게 내리기 어려워지는 환경이다.
파월 의장은 2025년 4월 시카고경제클럽 연설에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관세가 “더 높은 물가와 더 느린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연준의 책무는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묶어두고, 일회성 가격 상승이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준은 당분간 “상황이 더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밝혔다. 같은 자리에서 파월 의장은 연준 독립성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독립성은 법률의 문제다. 우리는 사유 없이 해임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 파월 의장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내가 그를 내보내고 싶다면, 그는 정말 빠르게 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본인 소셜미디어에는 파월 의장 해임이 “빠를수록 좋다”고 적었다. 파월이 유럽중앙은행처럼 오래전에 금리를 내렸어야 했고, 지금이라도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만을 품은 대상은 파월 개인만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의장을 임명할 수는 있지만, 의장을 소유할 수는 없다는 구조 자체가 문제였다.
닉슨을 따랐던 번스, 결국 볼커를 탄생시켜
대통령과 연준은 ‘긴밀한 협조자’인 적도 있었고 ‘충돌하는 대립축’인 경우도 있었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아서 번스 전 연준 의장은 전자의 사례다. 닉슨 전 대통령은 1972년 재선을 앞두고 번스 의장에게 통화 완화를 압박했다. 번스는 닉슨이 임명한 의장이었다. 닉슨은 경기와 선거의 시간표에 맞는 통화정책을 원했고 번스는 이를 따랐다. 번스에게 ‘살찐 비둘기’란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다. 닉슨은 저금리 정책의 도움을 받아 재선에 성공했지만, 미국 경제는 이후 1970년대 내내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대통령에게 연준은 물가 신뢰를 지키는 기관이기 전에 경기의 시간표를 움직이는 장치였다.
그러나 모든 의장이 같은 길을 간 것은 아니었다. 번스 다음에는 폴 볼커가 왔다. 번스는 정치의 시간표에 연준 신뢰를 내준 의장으로 남았다. 볼커는 그 신뢰를 되사야 했다. 볼커는 1981년 2월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 “인플레이션을 잡지 않고는 어느 기간에도 경제 성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자리에서 4% 실업률 목표를 단기적으로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인정하면서도, 지금의 정책이 시간이 지나면 완전고용과 물가 안정을 결합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완전고용을 추구하려면 인플레이션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볼커가 고용을 버렸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속 가능한 고용을 위해서는 물가 신뢰 회복이 먼저라는 뜻이었다. 볼커 의장 시절 미국 기준금리는 한때 연20%에 가까워졌다. 실업률은 두 자릿수로 올랐다. 미국 경제는 심한 침체를 겪었다. 볼커는 물러서지 않았다. 인플레이션 추세가 꺾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번스는 굴복의 사례로 남았다. 볼커는 신뢰 회복의 사례로 남았다. 두 사람의 차이는 의장이 누구의 시간표를 따르느냐에 있었다.
파월 의장은 볼커와 번스의 중간 정도의 길을 택했다. 파월은 취임 초기에는 금리를 내렸다. 그러다 2022년 잭슨홀 연설에서는 1970~1980년대의 교훈을 소환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낮고 안정적인 물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은 이제 정착된 원칙이라고 했다. 파월은 금리를 올리면서 경기와 시장의 고통을 감수했다.
볼커와 파월이 마주한 환경은 달랐다. 볼커는 1970년대 누적된 인플레이션을 다뤘다. 파월은 팬데믹과 공급망 충격, 재정 부양이 겹친 인플레이션을 다뤘다. 두 의장이 쓴 정책 도구도 같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은 비슷하다. 의장은 대통령의 시간표가 아니라 시장 신뢰의 시간표를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워시 앞에 놓인 30년물의 시험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의장이 바로 그런 의장이다. 그래서 워시가 다시 등장했다. 워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력적인 카드다. 그는 과거부터 연준이 너무 많은 역할을 떠안았다고 비판해왔다. 연준이 돈을 풀어 국채와 주택담보증권을 대거 사들이는 방식에도 비판적이었다. 동시에 그는 금리를 더 낮출 여지도 말해왔다. 작은 연준과 낮은 금리를 동시에 말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는 후보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워시 의장 앞에는 곧바로 어려운 환경이 놓였다. 연준 의사록은 물가가 여전히 높고, 중동 상황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봤다. 30년물 국채금리는 5%대다.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정치적 요구와 금리를 쉽게 내릴 수 없다는 시장 환경이 동시에 놓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장을 바꿨다. 그러나 시장 신뢰를 임명할 수는 없다. 단기금리는 정치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30년물 국채 수익률은 장기 물가와 재정 신뢰를 반영한다.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연준에 대한 정치적 강압은 없을 것이다. 확실히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워시가 원하는 대로 일하도록 두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파월 의장을 향해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해임 가능성까지 거론했던 기억은 시장에 남아 있다.
워시의 첫 시험대는 6월 16~17일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다. 그보다 그 회의를 매일 채점하는 30년물 시장이다.
<플러스 포인트>
▶트럼프는 의장은 바꿔도 장기금리는 못바꿔
▶워시가 낮은 금리 말해도 시장은 물가 주시
▶워시의 첫 시험대는 30년물 금리 안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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