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칩 시장을 선도하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기 행정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CEO로 부상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 경제 매체 CNBC는 22일(현지시간) 보도에서, AI 혁명의 중심에 선 황 CEO가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도 애플의 팀 쿡 CEO를 앞섰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를 전했다.
트럼프 1기 당시에는 쿡 CEO가 주목받았다. 미중 무역전쟁이 고조되던 시기에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도 공고히 유지했다. 이로 인해 애플은 고율 관세를 피하고 중국 시장 내 입지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2기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애플은 미국 내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엔비디아에 내줬고, 엔비디아는 지난 10일 글로벌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4조 달러를 돌파했다. AI 기술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황 CEO의 입지도 급격히 커졌다.
웨드부시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황 CEO는 이제 글로벌 리더이자 정치적으로도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인물”이라며 “AI 칩이 국가 전략 자산이 된 지금, 그 중요성 덕분에 황이 쿡보다 더 앞서게 됐다”고 평가했다.
황 CEO의 대외 행보도 두드러진다. 그는 최근 중국을 방문해 H20 AI 칩의 대중국 판매 재개를 공식 발표했다. H20 칩은 올해 초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 대상이었지만, 황 CEO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혀온 만큼, 이번 수출 재개에는 그의 로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올해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차례 회동했으며, 지난 5월에는 중동을 함께 방문해 아랍에미리트(UAE)와 대규모 AI 칩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H20 수출 재개는 황과 엔비디아에게 역사적 승리”라며 “이는 트럼프 행정부 내 황의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반면, 쿡 CEO는 트럼프 2기 들어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팀 쿡과 약간의 문제가 있다”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애플이 미국 내 생산이 아닌 인도에서 아이폰을 제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애플은 미중 갈등이 재점화되자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중국 생산을 줄이고 인도로의 이전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관세 책사’로 불리는 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고문은 “아이폰의 탈(脫)중국 속도가 느리다”며 쿡 CEO를 공개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가까울 것으로 예상됐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역시 최근엔 멀어진 분위기다. 트럼프와의 친분, 중국 내 사업 경험 등을 바탕으로 미중 갈등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후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비판하며 관계가 틀어졌다.
레이 왕 컨스텔레이션 리서치 CEO는 “트럼프 1기 시절 가장 영향력 있는 CEO는 쿡이었지만, 지금은 명백히 황과 엔비디아”라며 “이제 거의 모든 것이 엔비디아의 칩 위에서 돌아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