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필두로 연기금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거세지고 있다. 최근 4거래일 동안에만 주식을 1조2250억원어치 팔았다. 국내 주식 리밸런싱 유예 종료가 이달 말로 다가온 가운데 코스피지수가 9000선을 오르내리자 국민연금이 선제적으로 비중 조절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의 행보가 코스피지수 추가 상승의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4일 새 1.2조원 순매도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4거래일 연속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도를 기록했다. 일별 순매도액은 16일 70억원에서 17일 2470억원, 18일 3820억원, 19일 5890억원으로 매일 증가했다. 19일 순매도액은 2021년 9월 2일 1조483억원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주간 단위로 보면 매도세가 거세지는 흐름이 더 뚜렷하다. 연기금의 유가증권시장 순매도액은 6월 첫째 주 1970억원에서 둘째 주 8980억원, 셋째 주 1조2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첫째 주와 비교하면 셋째 주 순매도 규모가 약 6.1배로 커졌다. 이달 1일부터 19일까지 누적 순매도액은 2조2950억원으로, 14거래일 가운데 11거래일 동안 매도 우위를 나타냈다. 금융투자업계에서 하루이틀에 그친 차익 실현이 아니라 방향성을 띤 비중 축소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쏟아지는 이유다.
국내 증시에서 연기금 매매의 대부분은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지난 1월 기금운용위원회 결정에 따라 국내 주식 비중이 운용 허용 범위를 벗어나더라도 기계적으로 매도하지 않아도 되는 유예를 6월 말까지 적용받고 있다. 7월부터 자산 배분 기준이 다시 적용되는 만큼 유예 종료 직후 한꺼번에 매물을 내놓기보다 미리 국내 주식 비중을 낮춰 향후 매도 부담을 분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도 높였지만 9000선엔 역부족
기금위는 지난달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5.9%포인트 높였다. 전략적자산배분(SAA) 허용 범위도 기존 ±3%포인트에서 ±6%포인트로 확대했다. 전술적자산배분(TAA) 범위까지 고려한 국내 주식의 실질 허용 상단은 종전 19.9%에서 28.8%로 높아졌다. 국민연금발 대규모 매도가 증시 상승세를 꺾지 않도록 운용 한도를 대폭 늘린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코스피지수가 8000대 후반을 넘어서면 보유 중인 주식을 강제로 팔아야 해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이 이미 30%에 근접해 실질 허용 상단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외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등 다른 자산 가격과 환율에 따라 정확한 비중은 달라질 수 있지만 코스피지수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추가로 상승하면 국내 주식 매도는 불가피하다. 매도를 계속 미루면 장기 자산 배분 원칙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다만 국민연금발 ‘폭탄 매물’이 단기간에 증시로 쏟아질지는 불확실하다. 기금위는 지난달 국내 주식 목표 비중과 허용 범위를 높이는 동시에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최대 리밸런싱 규모를 줄였다. 기존보다 긴 기간에 걸쳐 매도 물량을 나눠 처분할 수 있도록 운용 방식도 유연하게 손질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주식 비중이 허용 상단을 넘더라도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단계적으로 비중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연기금 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당장 대규모 매물을 쏟아낼 가능성은 작지만 국내 주식 비중이 허용 상단을 넘어선 상태를 계속 방치하기도 어렵다”며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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