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70년을 넘기는 동안, 세계는 수많은 전쟁의 장면과 마주했다. 폭격받는 도시, 무너진 건물, 울부짖는 사람들. 반복되는 이미지는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 그런 비극에 익숙해지는 건 전쟁이 만드는 또 다른 부작용이다. ‘힌드의 목소리’는 그런 무감각에 균열을 내는 영화다. 폭발도 총격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한 아이의 목소리만으로.
2024년 1월 29일, 이스라엘군이 대피 명령을 내린 가자지구. 폭격을 피해 달아나던 한 가족의 차량이 총격을 받는다. 다급한 구조 요청이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사)에 닿지만, 통화 중 총성이 울리고 전화는 끊긴다. 사무실에 침묵이 내려앉은 그때, 차 안에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여섯 살 소녀 힌드였다. 홀로 살아남은 아이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닿는 순간, 적신월사 직원들의 필사적인 구조 시도가 시작된다.
구조대와 힌드 사이의 거리는 불과 8분. 하지만 그 8분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구조대가 출발하려면 이스라엘 국방부로부터 안전한 이동 경로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힌드와 처음 통화를 한 오마르는 당장 구조대를 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책임자 마흐디는 서두를 수 없다. 이미 여러 구조대원을 잃은 그에게는 힌드의 생명만큼이나 구조대원의 안전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두 사람의 충돌은 전쟁터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소모적인 과정인지를 드러낸다.그리고 그 과정의 한가운데에 아이러니가 있다. 그 순간에도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고 있는 바로 그 군대에게, 사람을 살리기 위한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것. 적신월사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전화기 앞에서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들의 무력함은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힌드의 목소리’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 위에 서 있다. 실존하는 어린이로 실제 차량에 고립됐던 힌드의 통화 녹음이 영화의 중심에 놓이고, 배우들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연기했다. 또한 적신월사 직원들이 찍은 실제 영상이 극적으로 재연된 장면과 섞이면서 현실과 재현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튀니지 출신으로 현실과 재현 사이의 긴장을 꾸준히 탐색해 온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장르의 경계를 ‘흐린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극화가 어디까지를 담아낼 수 있는지, 다큐멘터리가 어디까지를 지켜낼 수 있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품이라는 것.
15일 국내 개봉을 앞둔 이 작품은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수상하며 영화제 사상 최장인 23분간의 기립박수를 이끌어 냈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역사적·정치적 현실을 영화적으로 증언해 온 긴 계보 위에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최근엔 이스라엘 출신 아리 폴만 감독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바시르와 왈츠를’(2008년)과 팔레스타인 농부 애머드 버넷의 장편 다큐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2011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감독이 공동 연출한 ‘노 어더 랜드’(2024년) 등이 미국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