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생에너지 전환 소외...미래는 없다

4 days ago 3

한국의 재생에너지 부족이 반도체·AI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가 지난해 8월 발표한 보고서는 한국 산업의 재생에너지 조달 필요성을 숫자로 제시한다.

[한경ESG] 싱크탱크 리포트 ② 美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

‘한국 경제, 재생에너지로의 글로벌 전환에서 소외될 위험에 처하다’

IEEFA '한국 경제, 재생에너지로의 글로벌 전환에서 소외될 위험에 처하다' 보고서 표지. 사진=IEEFA

IEEFA '한국 경제, 재생에너지로의 글로벌 전환에서 소외될 위험에 처하다' 보고서 표지. 사진=IEEFA

2024년 어느 봄, 미국 싱크탱크의 한 보고서가 조용히 던진 물음이 한국 산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바로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가 발간한 보고서다. 제목을 직역하면 ‘한국 경제, 재생에너지로의 글로벌 전환에서 소외될 위험에 처하다(South Korea’s economy risks missing out on global transition to renewables)’이다. 하지만 핵심은 간명하다. ‘한국, 이대로 가면 기회가 없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데이터센터. 오늘날 세계경제의 핵심축이다. 그리고 ‘전력’은 이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축이다. 문제는 이 전력이 어디에서 오느냐다. 미국, 유럽, 심지어 인도네시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높이는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화석연료, 특히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리고 IEEFA는 이러한 흐름이 한국 산업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고 경고한다.

보고서 저자인 김채원 IEEFA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재생에너지 보급 실태는 해외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심각한 격차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산업현장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추적한다. 지난해 SK E&S, GS E&R, 한화에너지가 자가 소비용 LNG 발전 인허가를 신청한 사실,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LNG 열병합 발전소를 건립할 계획 등이 대표적이다. IEEFA는 이러한 흐름을 ‘위험한 역주행’으로 규정한다.

RE100을 비롯한 국제 이니셔티브와 규제는 점점 더 전력의 ‘출처’를 따진다.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 탄소집약도, 스코프 3(공급망 전반의 탄소배출량)까지 들여다본다. 최근 RE100은 석탄 및 LNG 혼소 발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반도체처럼 전력 다소비 산업일수록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받는다. 문제는 이 모든 기준이 수출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이에 김 연구원은 이러한 흐름이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의 경쟁력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이 같은 분석이 유효하다고 본다. 대부분 반도체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만큼 미국의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한국을 크게 상회하는 현실은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 속에서 ‘녹색 보호주의’는 한국 기업의 발목을 잡는 새로운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보고서가 던진 파장은 조용하지만 길게 퍼지고 있다. 일부 정부 부처와 대기업 전략 부서에서 보고서 내용을 검토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LNG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등으로 인해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핵심 전력원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보고서를 낸 김채원 연구원은 S&P 글로벌, IHS Markit, EY 등에서 화석연료 및 에너지 시장을 분석해온 17년 경력의 에너지·재무 전문가다. 2023년부터 IEEFA 한국 담당 수석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재생에너지 전환, 전력시장 구조, LNG 투자 리스크 등을 주제로 다수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숫자, 시장, 그리고 데이터에 머물러 있다. 그는 그 숫자가 말하는 방향에 따라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LNG에 의존하는 동안 세계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핵심 산업이 생존하려면 격차를 따라잡아야 한다.”

김채원 IEEFA 한국 담당 수석 연구원. 사진=본인 제공

김채원 IEEFA 한국 담당 수석 연구원. 사진=본인 제공

“에너지, 정치 아닌 기업경쟁력 문제로 다뤄야”
- 김채원 IEEFA 수석연구원

-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계기는.

“21세기 에너지 패권 전쟁터는 ‘재생에너지’ 산업입니다. 글로벌 반도체 구매자들은 공급망 내 기업의 탄소집약도를 매우 중시하죠.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재생에너지 사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낮습니다. 이를 정파적 도구로만 소비해온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에너지를 정치가 아닌 산업과 기업경쟁력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근거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국제회계기준 기후 공시(IFRS S2), RE100, 녹색금융 등 모든 탄소 관련 규제가 고탄소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4년 기준 10%대에 그칩니다. 이는 2023년 세계 평균 30%, OECD 평균 33%보다 크게 낮은 수준입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실행되더라도 한국은 여전히 세계 평균보다 15년 이상 뒤처진 셈입니다.”

- IEEFA에서의 주요 역할은.

“한국의 에너지 경제 및 재무 분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LNG, 발전·전력, 재생에너지, 바이오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14건 이상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번 보고서 외에도 한국 LNG 터미널 과잉 건설, 전력시장 삼중고, 한국전력의 구조적 문제 등을 분석해왔습니다.”

- 연구소에 합류하게 된 배경은.

2011년 영국에서 국제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본사의 글로벌 에너지 분석기관 싱가포르 지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석유화학·오일·가스·전력 등 다양한 화석연료 분야를 거쳤고, 자연스럽게 재생에너지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IEEFA에서 일하는 것은 제게 ‘커리어의 에너지 전환’이라고 할 수 있죠.

-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팩트와 숫자에 기반한 분석을 통해 한국의 에너지 전환을 돕고,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전략 수립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저의 직업적 소명입니다. 에너지 전환이 정치적 수사가 아닌, 산업과 국민의 편익에 관한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도록 앞으로도 객관적 데이터와 보고서를 꾸준히 제시할 계획입니다.

- IEEFA는 어떤 기관인가.

“IEEFA는 미국에 본부를 둔 비영리 ‘독립’ 에너지 연구기관으로, 세계 주요 국가 및 지역을 커버하는 ‘글로벌팀’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책입안자, 금융기관, 언론, NGO 등을 대상으로 재생에너지의 경제성과 화석연료 산업의 금융 리스크를 분석한 보고서를 제공합니다. 한마디로 에너지 전환 문제를 경제적·재무적 관점에서 연구·분석하는 기관입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