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매뉴얼만 지키다가…원유 90만 배럴 못 산 한국석유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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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매뉴얼만 지키다가…원유 90만 배럴 못 산 한국석유공사

입력 : 2026.04.03 00:02

석유공사 울산 본사. [한국석유공사]

석유공사 울산 본사. [한국석유공사]

지난달 중순 90만배럴 규모의 비축유가 한국석유공사의 우선매수권 미행사로 외국에 팔려나간 점이 논란이 된 가운데, 한국석유공사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내부 매뉴얼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향후 수급 불안이 심해질 가능성이 제기됐음에도, 한국석유공사가 내부 매뉴얼에 따라 보수적으로 대응하면서 국내로 들어온 원유 일부가 다시 해외로 유출된 셈이다.

2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석유공사는 내부 매뉴얼에 따라 자원안보 위기경보 단계별로 우선매수권과 관련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정해져 있다. 해당 매뉴얼은 한국석유공사와 산업통상부가 협의를 거쳐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원안보 위기경보는 ‘관심-주의-경계-심각’ 4단계로 운용된다. 비축 물량이 판매된 시점은 ‘관심’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앞서 정부는 중동 전쟁이 발발한 뒤 지난달 5일 원유에 대해 처음 ‘관심’ 단계를 발령했다. 이후 수급 여건 악화를 반영해 같은 달 18일 ‘주의’, 이달 1일 ‘경계’로 순차적으로 단계를 올렸다.

한국석유공사는 내부 매뉴얼에 따라 ‘관심’ 단계에서 가능한 조치를 검토한 결과, 당시로서는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 발발로 원유 수급 불확실성이 커졌더라도 공식 위기 단계가 낮은 만큼 선제 대응에 나서기에는 제약이 있었다는 뜻이다.

앞서 한국석유공사는 ‘국제 공동비축 계약’에 따라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PC)가 소유한 원유 200만배럴을 울산 비축기지에 입고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에 따라 한국석유공사는 저장된 원유에 대해 우선매수권을 보유한다. KPC는 이 물량 가운데 상당량을 국내 한 정유사에 판매하는 협의를 진행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달 9일께 KPC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가가 급등하자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베트남 응이손정유화학(NSRP)에 원유를 판매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한국석유공사가 KPC와 재협상을 통해 110만배럴은 국내에 공급하고 90만배럴은 NSRP에 판매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결과적으로 비축기지에 들어온 물량 중 90만배럴은 해외로 빠져나간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선매수권 행사 자체가 전례가 없는 데다, 고가에 사들인 원유가 이후 수급 상황 변화에 따라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어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내부 매뉴얼에 기대 보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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