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나우 -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투자하며 미래차 생산 거점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중심으로 공급망 탈탄소화를 추진한다. 단순한 생산기지 구축을 넘어 로봇·인공지능(AI)·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기술 상용화와 함께 계열사 전반에 걸쳐 공급망 탈탄소 전략을 병행하는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3월 24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을 방문,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2028년까지 4년간 미국에 2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제조업 재건 기조에 발맞추는 동시에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로보틱스·전동화 분야에서 ‘글로벌 톱티어’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현대차 미래 허브
HMGMA는 단순한 완성차 조립 공장을 넘어 현대차그룹의 미래산업 전략 기지로 육성된다.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위치한 이 공장은 2025년부터 연간 30만 대 규모의 전기차를 생산하며 향후 50만 대로 증설할 계획이다. 앨라배마(36만 대), 조지아(34만 대) 공장과 함께 미국 내 연간 120만 대 생산 체제를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HMGMA에서는 자율주행 기술이 탑재된 아이오닉 5 생산을 기반으로 웨이모와 협업이 진행 중이며,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기술은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하고 있다. 로보틱스 및 AI 분야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함께 로보틱스 & AI 연구소(RAI)를 설립해 차세대 플랫폼 개발을 추진 중이다. 현대차 산하 슈퍼널은 2028년 미래항공모빌리티(AAM) 기체 상용화를 목표로 여러 미국 주와 테스트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미래에너지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투자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은 미국 미시간주에서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을 추진 중이며, 현대엔지니어링은 텍사스주 태양광발전 프로젝트를 2027년 상반기 상업운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를 위해 북미 전기차 제조사 연합체인 ‘아이오나(IONNA)’를 통해 초고속 충전소 설치도 가속화하고 있다.
계열사까지 공급망 탈탄소화
이 과정에서 계열사, 협력사 공급망 탈탄소화를 함께 추진한다. 현대제철은 공급망 탈탄소화를 위한 핵심축이다. 루이지애나주에 58억 달러(약 8조2181억 원)를 포스코그룹과 공동 투자해 연간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일관제철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저탄소 자동차용 강판을 현지에서 직접 공급할 계획이다.
이어 현대모비스는 지난 4월 2일 글로벌 알루미늄 생산 기업인 에미리트 글로벌 알루미늄(EGA)과 태양광 기반의 저탄소 알루미늄 1만5000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알루미늄은 섀시 등 주요 부품 생산에 적용할 예정이다. EGA로부터 공급받는 저탄소 알루미늄은 기존 제품 대비 제조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75% 이상 감축할 수 있다. 일반 알루미늄 1톤 생산 시 약 16.5톤의 탄소가 배출되지만, EGA 제품은 4톤 수준에 그친다. 이는 지난해 현대모비스 전체 알루미늄 구매량의 20% 이상에 해당하는 규모다.
협력사와 함께 ‘탈탄소 성과’ 만든다
현대자동차는 2045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계열사뿐 아니라 협력사와 탈탄소화를 함께 추진하고 있다. 완성차 제조 과정만이 아니라 부품 조달과 생산에 이르기까지 협력사와 공동 대응해 ‘실측 가능한’ 데이터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추정(프록시) 방식으로 산출한 탄소배출량 데이터는 성과에 반영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현대차는 협력사의 탄소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정량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체계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단순한 권고 수준을 넘어 협력사들이 실질적 감축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22년에는 ‘협력사 탄소중립 가이드’를 제정·배포해 협력사 전반의 감축 기준을 제시했으며, 2023년부터는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 공급망 프로그램을 도입해 협력사의 탄소배출 정보 수집과 분석을 체계화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CDP가 운영하는 환경정보 공개 플랫폼으로, 기후 리스크 대응 전략과 감축 실적 등을 전 세계 이해관계자와 공유할 수 있는 글로벌 표준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에 국내 1차 협력사 360여 개가 참여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교육과 헬프데스크 운영을 통해 실무 지원도 병행한다. 특히 CDP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협력사를 대상으로 일대일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해 탄소배출량 산정 방법과 개선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협력사의 생산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계량하기 위해 전과정평가(LCA)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소재 채굴부터 부품 제조, 수송에 이르기까지 부품 단위의 전 과정 온실가스배출량을 파악해 고탄소 공정을 식별하고 감축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대차는 외부 전문 기관과 협업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단계에 걸쳐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향후 차량 단위의 LCA 탄소감축 활동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에너지 효율 향상과 직접적 탄소감축을 위한 설비 교체 지원도 병행한다. 현대차는 중견·중소 협력사를 대상으로 고효율 모터, 폐열회수 시스템, 절전형 공조기 등 탄소저감 설비 구매를 지원하며 이에 따라 생산비 절감과 배출량 감축 효과를 동시에 기대하고 있다. 이 외에도 RE100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공동 조달 프로그램도 설계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친환경적 공급망 구축으로 글로벌 환경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공급망 단계부터 탄소감축 노력을 구체화하겠다”고 전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