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GM 동맹 첫 결실…현대제철 강판, 美 GM도 뚫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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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다변화는 현대제철이 2010년 자동차 강판 시장에 뛰어든 이후 15년 넘게 풀지 못한 숙제였다. 포드, BMW 등 몇몇 글로벌 완성차업체에 일부 물량을 댔지만 그럼에도 현대자동차와 기아 비중은 80%를 훌쩍 넘었다.

한국GM도 난공불락 중 하나였다. 인천 부평공장에서 불과 100㎞ 떨어진 충남 당진 제철소에서 강판을 조달하는 만큼 물류비를 아낄 수 있는데도 한국GM의 답변은 언제나 ‘노(No)’였다. 현대차·기아에 설계 도면과 품질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걱정과 납품업체 변경이 부를 품질 저하 가능성 때문이었다.

변화의 기폭제는 미·중 관세전쟁 여파로 GM그룹이 ‘공급망의 탈(脫)중국’에 나선 것과 지난해 현대차그룹과 맺은 ‘포괄적 동맹’ 등 두 가지였다. 전자는 세계 1위 철강기업인 중국 바오산강철과의 절연을 불렀고, 후자는 현대제철을 그 대체제로 선택하도록 했다.

◇그룹사 제외 단일 공장 최대 물량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이번 계약으로 현대제철은 현대차·기아를 제외하고 단일 공장으로는 최대 물량(연 10만t)을 납품하는 고객을 확보했다. 현대제철에 선물을 안겨준 건 미·중 관세전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불거진 미국의 중국 견제가 시간이 갈수록 세지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산 부품 배제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GM 본사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고율 관세에 춤을 추는 중국산 부품 가격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방향이 정해지자 GM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 거점인 한국GM부터 움직였다. 한국GM은 자동차 강판의 70%를 포스코에서, 20%를 바오산강철에서 납품받는다. 나머지 10%는 국내외 소규모 업체에서 공급받는다. 한국GM은 이 중 중국 바오산강철 물량을 현대제철에 돌리기로 했다. 한국GM이 바오산강철 제품을 쓴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면 철강 제품 사용분에 대해 ‘중국 페널티 관세’가 추가로 부과되는 것을 감안한 조치다. 철강재는 자동차 원가의 10~15%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GM이 만드는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 생산량의 85%는 미국에 수출된다”며 “페널티 관세를 물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현대제철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GM은 최근 바오산강철에 이런 방침을 통보한 데 이어 현대제철 강판의 품질 인증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9~10월께 납품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의선·메리 배라 동맹 결실

현대제철이 수년 전부터 GM그룹 납품을 위해 품질 인증 작업을 한 것도 이번 결정에 도움이 됐다. 완성차업체에 공급하려면 품질과 규격 인증, 생산 제품 테스트 등을 받아야 하는데 현대제철은 연간 600만 대가량을 생산하는 글로벌 5위 메이커인 GM을 뚫기 위해 오래전부터 공을 들였다. 그 덕분에 전체 제품의 90%는 이미 GM 인증을 통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계약은 현대차그룹과 GM이 맺은 포괄적 동맹의 첫 결실이란 의미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메리 배라 GM 회장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포괄적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자동차 공동 개발·생산, 소재 및 부품 공동 조달 등을 주요 협력 분야로 꼽았다.

시장에선 이번 강판 분야 협력을 시작으로 두 그룹의 파트너십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 공장에 짓기로 한 일관제철소 생산 물량 일부를 GM이 사들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GM이 현대차그룹 부품 계열사 제품을 채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두 그룹이 세계 각국에 건설한 공장의 비어 있는 생산라인을 상대방에 내줄 수 있다는 관측 또한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의 한국GM 납품은 두 회사 간 협력이 본격 가동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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