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토치부터 공업용 방사기까지
온라인 쇼핑몰, 수백개 제품 홍보
제작법-발사 영상도 버젓이 올려
“화력별 위험도 기준부터 만들어… 총-칼 처럼 엄격한 관리를” 지적
5일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온라인 쇼핑몰에 ‘화염방사기’를 검색하자 수백 개의 제품이 곧바로 쏟아져 나왔다. 캠핑할 때 쓰는 저화력의 가스 토치부터 도로 공사, 주차선 시공 등에 사용되는 공업용 고화력 화염방사기까지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의 범행 도구가 화염방사기처럼 개조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실제 화염을 방사할 수 있는 고화력 가스 토치 등이 ‘화염방사기’라는 이름으로 별다른 규제 없이 무분별하게 판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층간소음을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피의자를 ‘정의 구현 열사’ 등으로 떠받드는 등 모방범죄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화염방사기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화염방사기’ 검색하자 수백 개 줄줄이
금속성 탄알이나 가스 등을 쏠 수 있는 총포 및 화약류 등은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조·판매·소지 등에 엄격한 허가가 필요하고 제조 방법을 게시하거나 유포하는 것도 금지된다. 하지만 가스나 기름을 연료로 화염을 발생시키는 화염방사기는 별다른 규제가 없다. 어느 정도의 화력이 고위험군인지 등을 규정하는 기준 등도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일정 이상 화력을 가지는 화염방사기는 철저한 규제나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주는 화염방사기를 소지하려면 허가증이 필요하고, 메릴랜드주에선 일반인의 소지를 아예 금지하고 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객관적 실험이나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화력별 위험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제품들은 구매 시 명부 등을 작성토록 하거나 관서에 등록하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제조법 영상도 버젓이… 모방범죄 우려도
층간소음 피해 등을 주제로 하는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봉천동 방화 사건 피의자를 ‘열사’ ‘정의 구현’ ‘의인’ 등으로 떠받드는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일부 이용자는 ‘수천 번이고 아파트에 방화하고 나도 죽고 싶다’ ‘농약살포기 굿아이디어, 윗집에 배송해줘야겠다’ 등 모방범죄를 암시하는 글도 게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화염방사기를 이용한 방화 사건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22년 3월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한 60대 남성이 가스 토치 등으로 자택과 집 및 산림에 불을 질러 산림 약 4190ha(헥타르)를 태웠고 393억 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발생시켰다. 이 남성의 모친은 불을 피해 도망치다 숨졌고, 징역 12년이 대법원에서 확정돼 복역 중이다. 2023년 6월엔 전남 화순군의 한 마을 주민이 250년 된 왕버들나무를 토치로 불태워 집행유예를 선고받기도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화염방사기의 경우 제조법 영상이 돌고, 구매도 용이하기 때문에 모방범죄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관련 영상을 규제하면서 (구매하는) 사람들의 용도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인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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